7일(현지시간) 프랑스 국적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현지 주간지 ‘샤를리 엡도’에 난입해 무차별 총격을 가한 사건은 서유럽 국가들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위험을 한눈에 드러낸 사건이다.
심각한 경제난 속에 반(反)이슬람 정서가 깊어진 가운데 터진 이번 테러로 반이민 정책을 내건 극우 정당의 정치적 입지가 강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슬람공포증(Islamophobia)’이 심화되면서 유럽 특유의 개방·다원주의 문화가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는 지적도 나온다.
프랑스 국민들은 수도 파리 한복판에서 12명이 사망한 이번 참사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프랑스의 무슬림 인구는 500만명 정도로 유럽 국가 중 가장 많다. 프랑스 무슬림은 전체 인구의 7.7%를 차지하는데 20세기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 식민지에서 건너온 무슬림의 후손이 늘면서 점차 그 규모가 커지는 추세다.
프랑스는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헌법 이념인 ‘세속주의’에 따라 공적 영역에서 종교적인 주장을 하거나 종교 상징물을 내세우는 것을 금지해 왔다. 이에 따라 무슬림 여성의 베일 착용 금지를 둘러싸고 무슬림 이민자들과 정부가 갈등을 빚어 왔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그와는 차원이 다르다. 소수에 불과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범행으로 ‘톨레랑스(관용)’의 대명사로 불리던 프랑스에서조차 전 무슬림에 대한 반감이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당장 8일에 프랑스에서는 이슬람 사원이나 사원 주변의 무슬림이 운영하는 케밥 식당 등을 겨냥한 ‘보복성 사건’이 잇따르는 등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로 인해 반사이익을 볼 정치세력이 극우 정당 국민전선(FN)이다. FN은 지난해 3월 지방선거에서 사상 최다인 11명의 자치단체장을 낸 데 이어 같은 해 10월 상원 선거에서도 2명을 당선시키며 처음으로 상원에 입성했다.
문제는 반이슬람·반이민 정서가 프랑스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독일 드레스덴에서는 지난 5일 ‘유럽의 이슬람화에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들(PEGIDA)’이라는 단체가 주도한 반이슬람 시위에 사상 최대인 1만8000명이 참가했다.
극우 세력이 최근 위력을 떨치는 스웨덴에서는 이슬람 사원을 방화하는 사건이 지난달 25일부터 지난 1일까지 잇따라 3건 발생했다. 영국 런던 킹스칼리지의 피터 누먼 국제과격주의연구센터 소장은 “지하디스트 조직원들이 더욱 과격화하는 데다 유럽 노동계급은 점점 정치적으로 소외됐다고 느끼고 있다”면서 “지금은 유럽사회에 위험한 순간”이라고 진단했다.
한편 이번 사건의 용의자는 사이드 쿠아치(34), 셰리프 쿠아치(32), 하미드 무라드(19) 등 프랑스 국적자 3명이라고 로이터 통신 등이 전했다. 이 가운데 무라드는 경찰에 자수했고 나머지 두 명은 도주해 검거작전이 펼쳐졌다. AP는 이들이 예멘의 테러리스트 조직과 연계돼 있다고 보도했으며, 시사 잡지 르푸앵은 이들이 지난해 여름 시리아에서 돌아왔다고 전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이종선 기자
bwb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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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1-09 04:39 수정 2015-01-09 0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