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에 이동식 과속단속 카메라가 있습니다.” 자동차 운전자라면 이런 내비게이션 안내 음성을 듣고 속도를 줄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가보면 이동식 카메라를 내부에 설치하는 직육면체 철제 상자는 비어 있거나 덮개로 가려져 있는 경우가 많다. 어떤 운전자는 카메라가 없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속았다”며 분통을 터뜨린다. ‘경찰이 눈속임용 부스를 마구 늘리고 있다’거나 ‘카메라를 자꾸 도난당해 모두 회수했다’는 식의 얘기가 나돌기도 한다. 진짜 그럴까.
비어 있는 상자가 많은 건 원래 카메라보다 상자가 많은 이동식 과속단속의 구조 때문이다. 경찰청은 8일 전국에서 운용 중인 무인 교통단속 카메라가 5620대라고 밝혔다. 이동식은 이 중 7%가 조금 안 되는 385대에 불과하다. 전국 250개 경찰서마다 1, 2대씩 있다. 나머지 카메라 5235대는 높은 기둥 위에 설치하는 고정식이다.
반면 이동식 카메라 부스는 878개나 된다. 카메라 수는 부스의 44% 수준에 그친다. 카메라를 모두 설치해도 부스 10개 중 5, 6개는 비어 있게 되는 것이다. 사실 모든 부스에 항상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면 이동식이라고 할 수 없다. 이동식 카메라는 1년에 2차례 점검을 받아야 한다. 고장으로 수리하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동시에 쓸 수 있는 카메라 수는 더 줄어든다.
이동식 카메라는 관할 경찰서 직원들이 주로 오전에 설치하고 저녁에 회수한다. 카메라를 넣고 부스는 잠근다. 언제 어느 부스에 넣을지 구체적 운용 방침은 경찰서 재량이다.
밤엔 거의 운용을 안 한다. 비교적 먼 100m 앞 과속 차량을 포착해 촬영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야간에 쓰려면 차량 번호판이 잘 보이도록 촬영 시 카메라 플래시처럼 불빛이 번쩍하는 조명 장치를 설치해야 하는데, 사고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동식 카메라는 고정식보다 2년 이른 1995년 도입됐다. 과거엔 경찰관 2명이 카메라를 삼각대에 설치하고 옆에서 지켰다. 파손되거나 도둑맞을까봐 그랬다. 이런 방식의 단속은 장소가 일정치 않다. 운전자들이 가까이 와서야 카메라를 보고 급제동하는 일이 잦아 되레 사고를 유발하기도 했다. ‘단속을 위한 단속’이라는 지적도 받았다. 담당 경찰관은 교통사고 위험에 노출되고 악천후엔 카메라를 운용할 수 없는 한계도 있었다.
결국 이동식 카메라는 2007년 부스로 들어갔다. 경기도 고양에서 과속 단속 중이던 경찰관이 차에 치어 숨진 사건이 계기였다. 부스 사용으로 경찰관들은 카메라를 지키지 않아도 됐다. 경찰의 인력 사정에 숨통이 트였다.
도로 관리자 입장에서 최대 장점은 빈 부스가 카메라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과속 운전자는 못마땅해 하지만 카메라가 있든 없든 내비게이션은 “전방에 이동식 단속이 있다”고 안내한다. 부스는 개당 300만∼500만원, 이동식 카메라는 대당 1500만원 정도 한다. ‘빈 깡통 부스’ 하나로 3∼5배 비싼 카메라와 같은 사고 예방 및 감속 효과를 내는 셈이다. 이 때문에 지방자치단체 등 각 기관은 가급적 부스를 늘리려 한다. 부스 설치·관리는 경찰이 아닌 도로관리청 소관이다.
경찰청이 최근 분석한 결과 무인 교통단속 장비로 얻는 편익은 설치·운용비의 3배 이상으로 나타났다. 박영수 경찰청 교통안전계장은 “과태료 수익 등을 빼고 순수하게 사고 감소로 얻는 이익만 따진 것”이라며 “무인 카메라가 비싸기는 해도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기획] “전방에 단속 카메라”… 어, 텅 비어 있네
입력 2015-01-09 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