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정보 유출 1년] (하) 당신의 보안 정보 지금은 안전한가

입력 2015-01-09 03:49

1년 전 터진 개인정보 유출사태를 재현하지 않으려면 주민등록번호를 기반으로 한 개인정보 체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개인정보 유출사태 이후 “주민등록번호 이외의 대안을 마련하라”고 강하게 주문했지만 아직까지도 해결책은 지지부진하다. 정부가 오프라인상 개인식별용 보완책으로 제시한 ‘마이핀(My-pin)’은 가입절차가 복잡하다는 한계를 갖고 있어 주민등록 체계 개편 속도를 높이기 위한 정부의 정책의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사용률 낮은 마이핀=정부는 개인정보 유출 방지대책의 일환으로 지난해 8월부터 생명·신체·재산상 이익을 위해 필수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주민번호 수집을 전면 금지했다. 대신 개인정보가 없는 13자리 무작위 숫자로 구성된 마이핀(온라인은 아이핀) 사용을 권장했다. 마이핀을 발급받으면 주민센터에서 각종 민원서류를 처리할 때나 마트·백화점 멤버십카드를 발급할 때 주민번호 대신 쓸 수 있다.

하지만 마이핀 활용도는 매우 낮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마이핀 발급건수는 약 168만건에 불과하다. 마이핀을 사용하려면 아이핀을 먼저 발급해야 하는 데다 본인 확인 작업과 추가 프로그램 설치 등 가입절차가 복잡한 탓에 널리 사용되지 않고 있다. 마이핀 발급 실적이 저조하다는 지적에 대해 행자부 관계자는 8일 “마이핀은 주민번호의 무분별한 수집을 막은 후 발생할 수 있는 과도기 상황에 대처하고 오프라인에서 개인식별 기능을 높이기 위한 보완책일 뿐”이라며 “이를 주민등록 체계 개편의 대안으로 보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결국 개인정보가 광범위하게 유출되는 것을 막으려면 주민번호 체계 개편이라는 핵심과제를 비켜갈 수 없다.

◇주민등록 개편, 안하나 못하나=정부는 주민등록번호가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것을 막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여전히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애초부터 국민의 개인정보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지 않고, 비용절감과 주민등록번호의 편리함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결과다.

지난해 9월 안전행정부(현 행정자치부)는 한국지방행정연구원과 함께 ‘주민등록 개선방안 공청회’를 열고 개편방안을 논의했다. 공청회 참석자들은 주민등록번호로 개인정보를 유추할 수 있고, 개인식별 수단으로 널리 활용되는 것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대안으로 주민등록증을 그대로 활용하되 신규 주민번호(규칙 또는 무작위 선정)를 발급하는 방안, 공무원 발급증처럼 개인정보 없이 무작위로 발행번호를 주는 방안, 양자를 혼합하는 방안 등 6개 대안을 선정했다.

하지만 이후 3개월이 지나도록 뚜렷한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주민등록증 발급비용에다 추후 주민등록 관련 시스템 교체비용까지 최대 6700억원이 들 것으로 추산됐기 때문이다. 또 개편 이후 국민들이 느낄 불편함을 감당할 수 없다는 점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지방행정연구원 관계자는 “당시 비용추계는 공공부문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민간부문까지 범위를 넓히면 조 단위의 비용이 들어간다”며 “법적으로는 주민번호 수집을 금지했지만 여전히 주민번호 활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바꾸는 게 효과가 있을지에 대한 의견도 분분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주민번호 숫자를 바꾸는 것으로는 정보유출을 막는 데 한계가 있어 사용목적을 분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권고안에서 “정부의 개인정보 보호 대책은 민간에서의 주민등록번호 수집과 이용 제한에만 초점이 맞춰져 이미 유출된 정보의 축적과 데이터베이스화를 통해 발생할 수 있는 범죄 피해와 국가의 개인정보 남용 문제에는 대책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인권위는 대안으로 세금 업무에는 납세자번호를, 연금 등 복지서비스 업무에는 사회복지번호를, 금융거래 업무에는 고객관리번호를 도입해 활용하라고도 권고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정보화 시대에는 주민번호가 개인정보를 모을 수 있는 ‘연결자’ 역할을 한다”며 “주민번호는 애초 도입 취지대로 행정 업무에만 활용하고 조세·금융·의료 업무 등 민감한 영역에서는 각각의 목적별 번호체계를 도입하는 게 주민번호의 폐해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부는 인권위의 권고안을 수용하지 않고 있다.

◇정보유출 불안감은 고스란히 국민에게=주민번호 체계 개편이 늦어질수록 그 불안감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된다. 은행에서 통장을 개설할 때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부분에 대한 것을 꼼꼼히 따지게 됐고, 카드사나 은행에서 상품 관련 전화를 하면 “내 번호를 어떻게 알고 전화했느냐”고 질문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택배로 배달된 박스에 부착된 휴대전화 번호와 주소지를 일일이 떼고 나서야 박스를 버리는 경우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카드사 정보유출 사태 이후 정보보안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소비자들은 개인정보 노출에 극도로 민감해졌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검토 중’이란 말만 반복한다. 행자부 관계자는 “주민번호 개편 이후 국민들의 불편함 등을 고려하다 보니 논의가 늦어지고 있다”며 “개편을 할지 말지도 아직 검토 중이어서 정해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