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태생적으로 주변인이었다. 부모는 고향 집을 떠나 옛 조상 땅으로 갔다. 묵을 방이 없었다. 마구간뿐이었다. 아이는 거기서 태어났고 천으로 싸인 채 말 먹이그릇에 눕혀졌다. 그릇은 거칠게 깎여진 나무 구유였다. 그의 비천함은 당시 성장했던 나사렛에도 표현됐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공생애 사역 동안 집 없이 살았고 중심 집단 사람을 외면한 적은 없지만 가난한 자와 약자, 장애인, 버림받은 사람, 외국인, 창녀들과 어울렸다. 그는 철저히 주변부 사람으로서 가르치고 행동했다. 병을 고쳐도 병자의 믿음 때문에 나았다고 했다. 광야 시험에서는 부와 명예, 지배욕이란 중심성을 말씀으로 극복했다. 종이며 거지였기에 고통당하고 모욕당했다.
책은 주변부 관점에서 바라본 ‘예수론’이다. ‘주변성’은 영어로 ‘마지널리티(marginality)’. ‘가장자리인 상태’ ‘변경 거주’란 사전적 의미를 갖는다. 책은 이 주변성에 근거한 새로운 ‘예수 그리스도’의 신학을 제안한다. 예수가 주변부를 살았다면 하나님의 백성 또한 주변부를 살아야 한다. 진정한 제자도는 주변부로 부르시는 주님께 대한 응답이다. 교회 역시 주변성의 공동체로 재발견돼야 한다.
저자에 따르면 오늘날 교회가 직면한 근본적 문제 중 하나는 우리 사회에서 교회가 중심 자리를 찾으려고 하는 경향이다. 하지만 교회는 세계의 주변부에 위치할 때 진정한 교회가 된다. 저자는 주변성이 해석학적 패러다임으로 기능할 뿐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본질로 가는 열쇠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힘썼다. 주변성의 정의부터 저자 자신의 정체성을 언급하면서 주변부에 살았던 예수의 삶을 추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주변성은 다원주의 문화 속에 사는 기독교인에게 필요한 관점이다.
주변성에 대한 고전적 정의는 국가 안에 있는 소수민족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다. 주변부 사람은 서로 다를 뿐 아니라 상호 적대적이기까지 한 두 세계에서 살아야 한다. 미국에서 아시아인으로 사는 것은 주변부 인생의 전형이 된다. 그들은 북미에서는 아시아인이지만 아시아에서는 미국인으로 살아간다.
저자 역시 주변인으로 살았다. 1935년 한국에서 태어나 6·25전쟁 직후 미국으로 건너가 신학을 공부했다. 그러면서 ‘코리안-아메리칸’으로 살았다. 민들레처럼 악착같이 버티며 서양문화의 한복판에서 동양을 호흡하며 한국 신학의 꽃을 피웠다. 재미 신학자 고(故) 이정용 드루대(조직신학) 교수. 그는 한국인이자 미국인으로, 미국인이자 한국인으로 살면서 주변성의 본질을 체득했고 신학화했다.
저자가 주변성을 강조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 내부에서 주변성이 간과됐기 때문이다. 책은 중심성보다 주변성을 강조함으로써 둘 사이의 균형을 회복시킬 수 있다고 설명한다. 조화를 만드는 균형은 새로운 중심, 진정한 중심을 추구한다. 이른바 ‘주변성 신학’은 중심부 접근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다.
저자는 신학 용어도 주변부적으로 정의했다. ‘기독론(Christology)’이라는 용어 대신 ‘예수론(Jesusology)’으로 불렀다. 저자는 예수와 그리스도 사이에 하이픈(-)을 넣었는데 주님은 항상 예수이자 그리스도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치 미국에서 ‘한국계-미국인’으로 표시하는 것처럼 예수를 ‘예수-그리스도’로 표기한 것이다.
초기 그리스도인은 로마의 억압 속에서 다른 종교·문화 집단에 거부된 주변부 사람이었다. 사도바울도 자신의 중심 배경을 포기하면서 예수의 제자가 됐다. 저자에 따르면 콘스탄티누스와 더불어 생겨난 기독교는 중심성에 근거한 가짜였다. 이 기독교는 중세의 강력한 교황제로 발전했고 세속 권력조차 교회의 탐욕을 막지 못했다. 가짜 기독교의 역사는 지금도 이어져 자본주의와 결탁하며 중심부 이데올로기를 조장하고 있다.
책은 십자가만이 중심 이데올로기를 변화시킬 해법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은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며, 교회는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에 의해 존재하도록 부름 받은 공동체이다. 새로운 교회가 다시 일어나기 위해 우리는 교회와 함께 죽어야 한다. 중심주의 경향이 죽어야 주변성이 다시 살아날 것이며, 이 부활로 새로운 주변 공동체가 만들어질 것이다. 가짜-그리스도교가 죽어야만 그 유해에서 진짜 그리스도교가 다시 일어설 것이다.”(191쪽)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책과 영성] 약자의 벗 예수처럼 당신도 주변에 서라
입력 2015-01-10 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