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양의 해' 을미년에도 국내 스포츠에선 다양한 감동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2014년처럼 굵직한 대회는 적지만 7월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를 비롯해 종목별 올림픽 예선과 세계선수권대회가 치러진다. 4대 프로 스포츠 종목(축구·야구·농구·배구)과 달리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군소 종목의 예비 스타들은 2015년을 자신의 해로 만들기 위해 묵묵히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국민일보는 이들의 새해 각오와 계획을 들어 보는 시리즈를 준비했다.
한국 여자 기계체조는 지난해 9월 인천아시안게임에서 희망을 쏘아 올렸다. 1974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 체조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처음으로 개인종합에서 동메달을 따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인천아시안게임이 시니어 데뷔 무대였던 윤나래였다.
개인종합 메달은 도마, 이단평행봉, 평균대, 마루 등 4개 종목을 골고루 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선수층이 극히 얇은 한국에서 그동안 메달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이유다. 아시아만 보더라도 중국은 세계 최대 인구를 바탕으로 체조학교에서 수많은 유망주들을 군대식으로 키워내고 있고, 전통적으로 체조 인기가 높은 일본에서는 전국 곳곳의 체조클럽을 통해 생활스포츠로 자리 잡았을 만큼 선수층이 두텁다. 하지만 윤나래는 중국과 일본 선수들 사이에서 당당히 개인종합 동메달을 획득한 것은 물론 마루에서 동메달을 추가했다.
7일 기계체조 대표팀의 연말연시 휴가를 마치고 서울 태릉선수촌에 돌아와 본격적 훈련에 돌입한 윤나래를 만났다. 그는 “부상 없이 몸 상태를 유지해 올 시즌 대회들을 잘 치르고 싶다”면서 “특히 10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내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출전권을 따는 게 목표”라고 신년 포부를 밝혔다.
여자 기계체조 국가대표팀 에이스인 그는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6살 때 대구에서 초등학교 체조반에 다니던 언니를 따라갔다가 체육 교사에게 발탁돼 전국소년체전 초등부와 여중부의 개인종합 및 4개 종목을 모조리 휩쓸었다. 특히 2012년 아시아 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개인종합 2위, 도마 및 마루 1위를 차지하며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윤나래는 “어릴 적엔 체조가 그저 재밌었고 힘든지도 몰랐다”며 “부모님이 뒷바라지를 열심히 해주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인천아시안게임을 1년여 앞두고 입은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종목 특성상 자칫 방심하면 골절 등 큰 부상으로 이어지곤 하는데, 2013년 5월 이단평행봉 연습 도중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오른쪽 팔꿈치를 다쳤다. 체조를 그만둬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변 우려가 컸지만 수술 이후 8개월간의 재활을 거쳐 2014년 2월 대표팀에 복귀했다.
큰 대회를 앞둔 중요한 시기에 공백 기간이 길어 그가 메달을 딸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부상을 딛고 묵묵히 훈련을 소화한 끝에 마침내 꿈에 그리던 메달을 품었다.
최명진 여자 기계체조 대표팀 감독은 “나래가 부상에서 회복한지 얼마 안돼 아시안게임 동메달을 딴 것을 보면 얼마나 정신력이 강한지 알 수 있다”면서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스타일이어서 앞으로도 더욱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창 친구들과 놀고 싶은 나이지만 훈련에 불만을 가져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다만 체중 조절로 인해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없어서 가끔은 속상할 때가 있단다. 그는 “운동선수는 인내심이 강해야 하는데 가끔 좋아하는 음식을 참지 못하고 먹고 난 뒤 후회한다”며 “지난 연말 고향 대구에 갔을 때 부모님이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것을 다 먹었더니 살이 좀 찐 것 같아서 다이어트 해야 한다”고 쑥스러워했다.
윤나래의 주 종목은 평균대다. 그럼에도 정작 대회에 나가면 평균대에서 실수를 범해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아시아 주니어선수권대회나 아시안게임에서도 도마와 마루에서 메달을 땄다. 그는 “평균대에서 잘해야 된다는 긴장 때문에 밸런스가 흐트러지는 것 같다”며 “올해 출전하는 대회에서는 평균대에서 실수하지 말고 제 실력을 발휘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울러 비인기종목인 여자 기계체조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호소했다. 그는 “양학선 오빠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남자 기계체조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지만 여자 기계체조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르시는 분들이 많다”면서 “내가 체조를 한다고 하면 다들 손연재 언니처럼 리듬체조를 하는 줄 안다”고 씁쓸해 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좀 더 좋은 성적을 거두면 여자 기계체조에도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해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긴다”고 당찬 표정을 지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2015 스타 예감] (1) 여자 기계체조 윤나래
입력 2015-01-09 00: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