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서울 영등포구 당산로 국제라이프선교회(LMI) 선교센터.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가 되면 이곳은 세계의 다양한 나라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장신대 총신대 감신대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ACTS) 등 유명 신학대학 10여곳에서 석박사 코스를 밟고 있는 외국인 신학생들이 서로 교제하며 성경 공부를 하는 장소다.
지난 3일, 겨울방학 중이라 많은 신학생들이 고국으로 돌아갔지만 한국에 남은 30여명의 학생들이 모여 진지하게 성경 공부를 하고 있었다. 유창한 영어로 성경 공부를 인도하는 이는 한태랑(73) 목사다.
“예수님의 탄생과 사역을 미리 예언한 것을 구약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 내용을 집중적으로 다뤄 함께 공부해 봅시다.”
미리 나눠준 영어 교재를 서로 돌아가며 읽고 의견을 나누는 성경 공부가 진지하다. 2시간 동안 이어진 성경 공부가 주기도문으로 끝을 맺고 모두 인근 식당으로 가 점심을 나눴다.
메뉴는 소고기국밥. 매운 김치며 얼큰한 국물을 맛있게 먹는 모습들이 한국 사람과 다를 바 없다. 다음 주에 또 만나자며 반갑게 손을 흔드는 신학생들의 손에 사랑이 담긴 교통비 봉투가 하나씩 들려진다.
한 목사는 주로 제3세계에서 한국의 신학을 배우고자 찾아와 공부하는 신학도들을 29년째 지원하고 있다. 3년 전 일선 목회에서 은퇴했음에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한 목사의 한결같은 유학생 사랑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1985년 담임하던 영복교회에서 런던바이블칼리지(LBC)에서 1년간 공부하도록 배려해 주었어요. 모두 8과목을 이수했는데 영어도 부족하고 가족과 떨어져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나그네의 심정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 목사는 물가 비싼 영국에서 유학생으로 톡톡히 고생하며 다짐한 것이 있었다. 자신이 시무하는 교회에 외국 신학생들이 오면 정말 잘해 주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귀국과 함께 실천에 옮겨졌다. 처음엔 식사를 나누고 교통비를 주는 것에 그쳤지만 소문이 나고 점점 인원이 늘면서 성경 공부를 시작했다.
“한국에서 신학교 석박사 과정을 하는 분들은 대부분 장학금을 받거나 외부의 지원으로 공부하는 분입니다. 현직 목사도 많고 상당한 인텔리층입니다. 다만 경제력이 없다보니 생활비가 부족해 힘들어하는데 저희가 매주 드리는 교통비가 적잖게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외국인 신학생 수가 증가하고 특수 선교의 중요성을 인지한 교회들이 한 목사의 사역을 돕기 시작했다. 이에 호응하는 여수제일교회 광주서광교회 등 20개 교회를 중심으로 LMI가 1997년 출범한다.
“3∼5년간 매주 유학생 얼굴을 보다 보면 아주 친숙한 관계로 발전합니다. 많이 모일 때는 90여명까지 모였습니다. 이들이 모국으로 돌아가 모두 기독교 지도자가 되는데 거의 LMI지부가 되겠다고 자청하곤 합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인연을 맺고 있는 곳이 해외 25개국 139개 지역에 달한다. LMI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지회를 보유하고 있는 선교기관인 셈이다. 한 목사는 이들 지회에 그동안 26권의 신학 서적을 새로 제작해 보내주는 문서선교의 열정도 보였다.
“우린 성경주석이나 신학 서적이 흔하지만 후진국은 아예 자료가 없어요. 그래서 목회에 도움이 될 내용을 제작해 선교지로 배송합니다. 이 일에 많은 돈과 노력이 필요한데 주변에서 정성껏 헌금을 해주어 큰 힘이 됐습니다.”
26권 중 9권은 한 목사가 직접 자료를 모아 집필했다. 또 목회자 세미나를 요청하는 나라엔 한국의 강사진을 대동해 집회를 열었다. 그동안 12개국 18개 도시에서 세미나가 열렸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전국에서 800명의 목회자가 모이는 큰 행사가 되기도 했다.
“타문화권에 직접 들어가 선교하는 것도 좋지만 한국에 들어온 제3세계 기독교 지도자들을 잘 섬기고 영적으로 변화시켜 보내는 것은 더 효율적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분이 원하시는 방법이 진정한 선교라고 여긴다는 한 목사는 “이 모임이 오랫동안 정착하고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개개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였다”며 “무조건 우리식으로 바꾸려 하지 말고 타문화에 대한 존중과 함께 진지한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성경 공부 모임에 온 나이지리아인 느헤미야(35·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박사과정)는 “학교에서 배우지 못하는 여러 가지를 이곳에서 얻고 있다”며 “우리 교단에는 여목사 안수 제도가 없는데 여성 목사 안수가 성경적이란 논문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박사학위까지 마치고 종로에서 몽골인 대상으로 신학교를 운영하는 수밧(45) 목사는 “이곳의 자료와 정보가 학교 운영에 도움이 돼 빠짐없이 참석한다”며 “매주 신학생들을 정성껏 대접해주는 LMI가 정말 고맙다”고 했다.
미얀마에서 온 에스더(39·서울기독대학 박사과정)도 “한국생활이 너무나 힘들어 돌아가려 했는데 한 목사님의 격려와 관심에 용기를 다시 내 공부하고 있다”며 “현재 염창동에서 미얀마 노동자들을 위한 교회를 맡아 설교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제가 성경 공부에 더 매달리는 이유는 제3세계 기독교가 의외로 자유주의 신학, 종교다원주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어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님만 구주인 것을 확실하게 인지시키고 이단에 대한 분별력을 확실히 갖게 하는 것만으로도 이곳의 사명이 큽니다.”
이임 전엔 영복교회에서 모였으나 지금은 선교센터에서 사역하는 한 목사는 오랜 기간 LMI를 정성껏 섬겨준 분들의 이름을 꼭 넣어줄 것을 요청했다. 김성천 고광석 한기승 임재환 이임혁 목사를 비롯해 김주연 한하은 한하나 지광진 집사, 선킴 선교사 등이다.
“한국교회가 어장에 들어온 물고기를 잘 관리해 해외 선교가 극대화될 수 있길 희망합니다,”
적지 않은 나이에 LMI(lmi.kr) 대표로 왕성하게 활동하며 집필과 강의, 선교지 집회를 이어가고 있는 한태랑 목사. 그는 “앞으로도 힘 닿는 데까지 한국에 온 외국인 신학생과 지도자들을 돕겠다”며 활짝 웃었다.
인도서 온 3년차 유학생 사티아 다니엘
“한국 성도 열정에 놀라 … LMI 못잊을 것”
“국제라이프선교회(LMI)는 저의 영성 충전소입니다. 이곳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도움 받고 있습니다.”
한국생활 3년차인 사티아 다니엘(30)은 인도 남부지역 첸나이가 고향이다. 일찍 주님을 만나 주의 종이 될 것을 서원하고 안디옥 비브리컬성서대학교에 입학, 신학대학과 신대원(M.Div.) 과정을 마쳤다.
“열심히 공부한 결과 학교에서 우수 학생에게 주는 골드메달을 받아 한국 ACTS에서 박사과정을 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받았어요. 마침 남편이 한국 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고 3년 전 딸과 함께 기쁜 마음으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답니다.”
ACTS에서 학문적으로는 깊이 있게 공부할 수 있었으나 영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갈급함이 있었다. 우연히 알게 된 LMI 토요성경공부모임에서 갈급함을 마음껏 채울 수 있었다.
“LMI의 성경공부 주제는 선명합니다. 유일신 하나님과 오직 복음을 강조하며 성경의 틀 안에서 서로 의견을 활발히 나누고 영적 성장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또 좋은 친구도 많이 사귀고 타 대학 학생들과 신학 공부의 폭을 넓힐 수 있어 감사하게 여깁니다.”
사티아는 “특히 한태랑 목사님의 열정과 호의는 항상 넘쳐흐른다”며 “올해 조직신학 과정을 끝내고 박사 학위를 받게 되는 데 도움을 준 ACTS와 LMI를 잊지 못할 것”이라며 고마운 마음을 표시했다.
“주일은 분당 만나교회에 출석해 영어워십 셀그룹 리더를 맡아 봉사합니다. 한국교회 성도들의 헌신적인 봉사와 기도는 늘 놀랍게 만듭니다. 성도들이 일주일에 서너 번씩 교회에 나오는 사실이 정말 신기합니다.”
사티아는 학위를 받아 모교에 돌아가면 학생들을 가르칠 계획이다. 그러다 여건이 된다면 한국적 신앙훈련을 시키고 신학 커리큘럼을 가르치는 신학교를 독자적으로 운영해 보고픈 비전을 갖고 있다.
“인도는 가톨릭을 포함해 크리스천이 3% 남짓으로 매우 열악합니다. 오랜 관습과 제도에 얽매여 복음화에 따른 방해요소를 많이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많은 선교사님들이 인도에 들어와 열정적인 선교사역을 펼쳐주시고 계신 것을 감사하게 여깁니다.”
사티아는 “인구가 12억이 넘는 인도는 무한한 인적자원을 보유한 나라”라며 “하루빨리 복음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얼굴] “외롭고 배고픈 유학생활 겪어봐서 알죠… 그들 잘 섬기는 것이 선교”
입력 2015-01-10 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