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1차 조사 직후 조현아 “왜 내 잘못이냐”

입력 2015-01-08 04:43 수정 2015-01-08 10:36

“Cabin item check(기내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지난달 5일 미국 뉴욕 JFK공항에서 인천으로 향하기 위해 활주로 쪽으로 10m가량 주행하던 대한항공 KE086 항공기가 갑자기 멈춰 섰다. 주기장이 이륙을 준비하던 항공기로 붐벼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3분간 미동도 없었다. 이어 기장이 관제탑에 이같이 말하며 회항을 요청했고, 사고를 우려한 관제탑은 ‘램프 리턴’(항공기를 탑승 게이트로 되돌리는 일)을 허가했다.

이 항공기가 갑자기 멈춰선 것은 박창진(44) 사무장이 인터폰으로 기장에게 “기내에 응급상황이 발생했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응급상황’은 조현아(41·여)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견과류의 일종인 마카다미아 서비스를 문제 삼아 박 사무장을 내리게 한 것이다. 247명의 승객이 탄 항공기의 안전을 위협한 철없는 재벌 3세의 행각이 검찰 수사 착수 27일 만인 7일 낱낱이 드러났다.

조 전 부사장은 램프 리턴 후 다시 활주로로 나가는 비행기 안에서 대한항공 객실승무본부 여모(58) 상무에게 스마트폰으로 이메일을 보냈다. “기내 서비스 하나 제대로 못해 비행기 딜레이된 거 담당자 문책할 테니 월요일에 팀장회의 준비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룹 오너 일가의 장녀가 보낸 서슬 퍼런 이메일에 대한항공 본사는 발칵 뒤집혔다. 여 상무는 서둘러 미국에 남아 있던 박 사무장에게 경위서를 요청했다. 박 사무장은 당시 상황을 적나라하게 기재한 리포트를 제출했다. MS워드 프로그램으로 작성한 리포트는 일반 폰트보다 훨씬 작은 7포인트 크기 글자로 A4용지 3장을 빽빽하게 채웠다. 본사는 다시 한 번 뒤집혔다. 검찰 관계자는 “여 상무가 해당 리포트를 차마 조 전 부사장에게 보여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여 상무는 급거 귀국한 박 사무장에게 “내 눈 앞에서 리포트를 삭제하라”고 지시했고, 사무장은 그가 보는 앞에서 노트북을 켜 삭제했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지만 조 전 부사장은 그때까지도 잘못을 깨닫지 못했다. 지난달 8일 박 사무장에 대한 국토교통부 1차 조사 직후 객실승무본부 여 상무에게 전화해 “승무원이 매뉴얼을 숙지 못해 하기시킨 게 왜 내 잘못이냐. 오히려 사무장이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질책했다. 이어 이튿날 여 상무가 사표를 제출하자 이를 반려하며 ‘사태 잘 수습하세요’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여 상무는 이에 ‘법 저촉사항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이근수)는 이런 ‘지시성 질책’을 허위 진술과 증거인멸에 개입한 증거로 봤다. 조 전 부사장에게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추가했다. 20여분간 이어진 기내 난동은 항공보안법 위반(항공기항로변경·항공기안전운항저해폭행)과 형법상 강요 및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국가기관인 국토부의 조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해 부실조사를 초래했기 때문에 조 전 상무는 여 상무와 ‘공동정범’이 된다”고 말했다.

조 전 부사장은 “항공기가 출발한 줄 몰랐다”며 항공기항로변경죄를 부인했다. 항공기항로변경죄는 법정형이 징역 1년 이상, 10년 이하인 중범죄다. 검찰은 램프리턴 상황이 담긴 미국 JFK 공항 항적추적 시스템 영상을 증거자료로 법원에 제출키로 했다.

대한항공은 조직적으로 증거를 인멸했다. 여 상무는 국토부 조사를 받는 대한항공 임직원들에게 거짓 진술을 요구했다. 박 사무장 등에게는 허위 경위서를 작성토록 했다. 지난달 11일 검찰이 대한항공 본사 압수수색에 나서자 부하 직원에게 자료를 지우고 컴퓨터 한 대를 바꿔치기하도록 지시했다. 김모(54) 국토부 항공안전감독관은 국토부 조사 상황과 향후 계획 등을 여 상무에게 실시간으로 보고했다. 그는 여 상무의 대한항공 입사 1년 후배였다.

검찰은 여 상무를 증거인멸, 증거은닉, 강요,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김 감독관을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함께 구속 기소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