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반년 새 반 토막이 났다. 정부는 유가 하락이 성장률 상승 등으로 이어져 우리 경제에 호재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주가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고, 국민들 역시 주유소에서 기름 넣을 때 외에는 유가 하락에 따른 이득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유가 하락에 따른 생산비 절감 등 과실을 기업만 따먹는 것이 아니라 이를 가계로 내려보내 ‘가계소득 증가→구매력 상승→내수 활성화’로 이어지도록 하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유가 하락으로 올해 성장률 4%대 달성 가능?=한국개발연구원(KDI) 등 5개 국책 연구기관은 7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유가 하락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 분석’을 보고했다. 이 보고서는 ‘유가 하락=우리 경제에 호재’라는 정부 입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KDI 등은 올해 유가에 대해 가장 가능성이 높은 ‘기준 시나리오’(두바이유 기준 연평균 배럴당 63달러)가 현실화할 경우 우리나라 경제성장률과 경상수지는 각각 0.1% 포인트, 52억 달러 상승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만약 기준 시나리오보다 10% 하락해 배럴당 49달러가 될 경우 경제성장률은 0.2% 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가 전망한 올해 경제성장률이 3.8%인 점을 감안하면 유가가 배럴당 50달러를 밑도는 현 상황이 1년 동안 유지된다면 4%대 성장도 가능해지는 셈이다. 반면 유가가 기준 시나리오보다 10% 상승한 80달러 이상이 된다면 고유가에 따른 성장률 하락폭은 0.2% 포인트가 될 것으로 국책 연구기관들은 전망했다. 이들 기관은 유가 하락이 지속될 경우 러시아 등 일부 산유국과 신흥국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 가능성이 매우 낮은 것으로 평가했다.
유가 하락에 따른 디플레이션 우려에 대해서도 정부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회의에서 “디플레이션은 주로 수요 부족으로 발생하는데, 이번 국제 유가 하락은 공급 (과다) 요인에 의한 것”이라며 “저유가가 실질소득 증대로 이어져 오히려 수요를 보강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유가 하락에 따른 밝은 면만 강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연세대 성태윤 교수는 “유가 하락은 공급 과잉보다는 세계경제가 침체되고 있는 것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며 “유가 하락은 전체적으로 볼 때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 경제에 호재는 아니다”고 말했다.
◇유가 하락 훈풍 가계까지 불게 할 수 있을까=최 부총리는 “5개 국책 연구기관이 전망한 대로 올해 국제 유가가 배럴당 평균 63달러 수준을 유지한다면 약 30조원의 실질소득 증대 효과가 있고, 원유 수입 비용만 300억 달러가 절감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5개 기관도 유가 10% 하락 영향이 모두 석유제품 가격에 반영될 경우 가구당 연간 17만원 내외의 소득증대 효과가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까지 유가 하락의 과실이 가계에까지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국제 유가 하락을 전반적인 제품 가격 인하와 국내 소비 증가로 연결하는 정책을 추진키로 했다. 최 부총리도 “소비자가 혜택을 볼 수 있도록 국제 유가 인하분이 석유·화학제품 등 소비자 가격에 적절히 반영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을 어떻게 펼칠 것인가’에 대해서는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시장경제 구조에서 정부가 기업에 일방적으로 제품 가격을 내리라고 명령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식음료 업체는 소비자 가격을 올리는 추세다. 연초 가스요금을 5.9% 인하했듯 공공요금을 조정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실제 유가 하락을 국민들이 실제 경제생활에서 체감하기까지는 시일이 좀 더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대우증권은 유가 하락에 따른 소비여건 개선은 하반기에야 가능할 것으로 봤다. 유가 하락은 단순하게 보면 산유국의 부(富)가 원유 소비국으로 이전되는 과정인데, 현재는 대내외 불확실성으로 유가 하락으로 생긴 소비여력이 소비보다는 저축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우증권은 유가 하락이 하반기 이후에는 세계경제의 생산성을 높이고 불황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분석했다. 물론 우리 경제에 이런 훈풍이 이어지려면 유가가 단기간에 급등하지 않는 것이 전제조건이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셰일가스 생산국인 미국 간의 생산량 감축 없는 ‘버티기 싸움’이 이어지면서 바닥을 알 수 없는 상태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선물시장에서 유가가 배럴당 20달러까지 떨어진다는 데 투자하는 풋옵션 수요가 등장했고, 금융시장 불안으로 안전자산인 미국 장기국채에 자금이 몰리고 있다. 그러나 2008∼2009년 금융위기 당시 유가가 40달러에서 150달러까지 춤췄던 전례를 감안하면 유가 전망은 무의미하다는 지적도 있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유가 전망은 말 그대로 전망치일 뿐”이라며 “갑자기 급등할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윤성민 기자 zhibago@kmib.co.kr
[wide&deep] 정부 “2015년 4% 성장도 가능” 장밋빛… 가계 체감 ‘감감’
입력 2015-01-08 03: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