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하루키가 불러낸 거장의 음악 세계

입력 2015-01-09 02:05
일본의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오른쪽)가 역시 일본을 대표하는 마에스트로 오자와 세이지를 1년에 걸쳐 인터뷰했다. 전문가와 전문가적인 아마추어가 주고받는 얘기 속에서 진정한 음악 애호의 세계를 보는 재미가 있다. 비채 제공
꽤 상품성 있는 기획이다.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일본의 간판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65)가 역시 일본을 대표하는 마에스트로 오자와 세이지(79)를 1년여에 걸쳐 인터뷰했다. 기획자는 하루키. 오자와가 2009년 말 식도암 수술을 해 음악활동을 쉬게 되자 그의 팬인 하루키가 제안했다. 오자와는 1973년 미국 3대 악단 중 하나인 보스톤 교향악단 음악감독을 맡으며 세계적 명성을 굳혔다. 출판사는 ‘세기의 만남’이라는 거창한 표현을 썼다.

인터뷰는 하루키의 가나가와 현 자택이나 도쿄 작업실에서 이뤄지기도 했지만, 서로가 머무는 현장을 찾아 스위스에서, 하와이에서도 진행되기도 했다.

하루키는 재즈 뿐 아니라 클래식에도 빠져 살았던 자타공인 음악애호가다. 그래선지 “음악에 대해 각자 헌신하는 바를 그대로 부각시키고 싶었다”는 그의 기획 의도를 살려 이 책은 클래식 음악에 관해 아마추어가 묻고 전문가가 답하는 형식이다.

하루키가 틀어주는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과 글렌 굴드(캐나다 피아니스트) 협연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제1번, 카라얀과 굴드 협연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3번 등의 실황 레코드(CD가 아니다)를 들으며 주고받는 두 사람의 얘기는 사실 전문적이다. 따분할 법한데 ‘음악 애호의 세계’를 엿보는 재미가 있다. 즐기는 것에도 경지가 있다는 걸 전문가와 전문가적 아마추어의 대화는 보여준다.

“이런 부분은 이 템포로도 괜찮아요. 세컨드 테마 부분 제법 괜찮죠?” “좋은데요.”

오자와가 카네기홀에서 지휘한 브람스 교향곡 제1번 실황 녹음 CD를 들을 땐 하루키가 이렇게 말한다. “관악기로 말하자면 이번 호른주자, 아주 좋던데요.”

이 책은 본격 인물탐구는 아니다. 그러나 음악인 오자와가 세계적 지휘자로 성장하기까지 그가 기울인 노력과 열정, 남과 구별되는 삶의 방식 등이 하루키의 정감 있는 인터뷰를 통해 자연스럽게 회고된다. 20, 30대 청년시절이던 1960년대 뉴욕에서 레너드 번스타인의 부지휘자로 있으면서 ‘쥐꼬리의 쥐꼬리’ 같은 월급을 받고 반 지하 주택에 살아야 했던 일, 익혀야 할 게 너무 많아 ‘돈벌이 알바’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는 얘기, 정지휘자의 펑크를 대비해야 하는 위치지만 리허설을 할 수 없으니 ‘레니’(레너드 번스타인의 애칭)의 지휘 스타일을 그야말로 딱 붙어서 보며 ‘암기’한 일까지….

허기졌으나 열정 넘쳤던 거장의 청춘시절이 오자와 특유의 솔직한 말투로 회고돼 더욱 울림이 있다. 지휘자에게 심포니 지휘와 오페라 지휘는 차의 좌우 바퀴와 마찬가지라 어느 한쪽이 빠져도 문제라며 그에게 오페라 지휘의 기회를 줬던 카라얀에 대한 회고 등 인터뷰를 읽다보면 클래식 세계를 입문서보다 친절하게 익힐 수 있는 것도 이점이다.

문학 얘기도 걸쳐진다. 이때는 오자와가 호기심을 발동하며 질문하고 하루키가 답하는 모양새가 된다. 글 쓰는 법을 음악에서 배웠다는 하루키는 글에 있어 리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한다. 단어의 조합, 문장의 조합, 문단의 조합, 딱딱함과 부드러움, 문장부호의 조합 등에 의해 문장의 리듬이 생겨난다고 자신의 문장론을 조곤조곤 들려준다.

긴 인터뷰를 끝내고 하루키가 찾아낸 둘의 공통점이 인상적이다. 몰입의 능력과 헝그리 정신, 예술가적 고집 세 가지인데, 독자들도 맞장구를 칠 것 같다. 권영주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