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m 높이의 천장에서 햇빛이 쏟아져 내린다. 산책로를 따라 늘어선 싱그러운 가로수와 꽃 덤불은 이곳이 지하라는 생각마저 잊게 만든다. 길 한쪽에는 거리의 악사들이 작은 콘서트를 열고 맞은편 벽면의 유명 작가들 사진과 그림 앞에는 사람들이 두런두런 모여 있다. 지상으로 향하면 숨 막힐 듯한 맨해튼의 마천루와 마주하겠지만 이곳을 산책하는 동안 시민들은 도시의 혼잡함도 바쁜 일상도 잠시 잊고 여유에 젖는다.
버려진 지하공간을 활용해 도심 속 휴식 공간을 만드는 ‘로 라인(low line)’ 프로젝트가 미국 뉴욕에서 추진되고 있다. 맨해튼 동남부의 낡은 지하 전차터미널을 개발해 대규모 지하공원으로 개조한다는 구상이다.
로 라인의 기본 구상은 맨해튼의 화물용 고가도로에 꽃과 나무를 심고 벤치를 설치해 도심 속 공원으로 재조성 중인 ‘하이 라인 파크’ 프로젝트에서 가져왔다. 지상의 고가도로를 공원으로 꾸몄듯 지하의 쓸모없는 공간을 유용한 휴식처로 재탄생시키자는 취지다.
미국과 영국 언론들은 6일(현지시간) 뉴욕의 랜드마크가 된 맨해튼 하이 라인 파크의 성공으로 대도시의 유휴지(遊休地·활용하지 않는 땅) 활용이 세계적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면서 로 라인 프로젝트 등을 소개했다.
맨해튼 로 라인 파크는 기술홍보전문가 댄 바라시와 전 미 항공우주국(나사) 엔지니어인 디자이너 제임스 렘지가 설립한 비영리 ‘로 라인 프로젝트’가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밀집된 공간에서 살아가는 뉴욕 시민들에게 지하를 활용한 창의적인 공원과 매력적인 휴식·문화생활 공간을 제공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로 라인 파크가 들어설 지역은 1에이커(1224평) 크기의 윌리엄스버그 다리 전차 터미널로 1908년 개장했으나 1948년 이후 사용이 중단된 곳이다. 이곳에 ‘원격 채광’과 ‘태양열 집열장치’를 통해 빛과 열을 20피트(6.1m) 깊이의 지하로 끌어들여 식물과 나무들이 자랄 수 있는 친환경 공원을 조성한다는 구상이다. 총 6000만 달러(658억5000만원)의 개발비용은 민간 투자를 중심으로 일부 정부 지원을 받아 충당할 계획이다.
포화상태인 지상 공간의 한계를 극복해 버려진 공간을 휴식 공간으로 재생시키려는 다양한 구상은 국내에서도 활발해지고 있다. 서울시는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를 벤치마킹해 노후화로 철거 위기를 맞은 서울역 고가도로를 도심 속 녹지공원으로 탈바꿈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 마포구는 지난달 22일 마포구 아현동의 지하보도를 음악 창작공간 ‘뮤지스땅스’로 재조성했다. 대전, 의정부, 고양 등 전국 각 지자체들도 노후한 지하보도를 갤러리 등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뉴욕 버려진 지하공간에 환상의 공원 만든다
입력 2015-01-08 0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