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문건유출사태 책임지는 이 그 누군가

입력 2015-01-08 02:50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 발표를 놓고 야당은 물론 여당 일각에서까지 청와대 인적 쇄신과 특검 수사를 주장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친이명박계 좌장인 이재오 의원은 “찌라시 수준의 문건이 청와대에서 유출됐고 연말에 정국을 혼란스럽게 만들었으면 최소한 도의적 책임을 지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청와대의 과감한 인사 조치를 언급한 데 이어 특검에 대해서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중진인 정병국 이군현 의원도 유사한 발언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들의 지적을 귀담아 듣지 않으면 안 된다. 청와대 홍보수석을 통해 “몇 사람이 사심을 갖고 있을 수 없는 일을 했다”는 식으로 정리하고 싶겠지만 여론이 상상 이상으로 싸늘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애당초 대다수 국민은 검찰 수사에 특별한 기대를 걸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이 비선의 국정개입이 없었다고 공개적으로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특검 수사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부실하기 짝이 없는 검찰 수사 결과만으로도 박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박관천 전 행정관의 비리는 대통령을 모시는 주요 공직자로서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민간인인 대통령 동생이 청와대 비서관으로부터 문건을 받아본 것도 아주 잘못된 일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이 그를 둘러싼 권력다툼이라는 점에서 박 대통령도 자유로울 수 없다. ‘이유 불문하고 국민들께 송구하다’는 정도의 사과는 하는 것이 옳다.

박 대통령은 오는 12일 기자회견을 갖고 새해 중요 국정과제를 설명하며 국민들에게 협조를 당부할 예정이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실천과 4대 분야 구조개혁을 강력히 밀어붙이기 위해서는 국민 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에 대한 사과 한마디 없이 국민의 이해와 협력을 요청하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다. 이에 대한 대통령의 침묵은 책임정치와도 배치된다.

대국민 사과만으로는 부족하다. 인적 쇄신이 뒤따라야 한다. 비서실 문건이 다량 유출돼 기업과 언론사에 넘어가고 전직 비서관이 청와대에 반기를 들었다는 것은 국정 컨트롤타워로서의 청와대 체면이 땅에 떨어졌다는 뜻이다. 김기춘 비서실장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기회에 비서실 조직 전반을 점검하고 역량을 강화해야겠다. 박 대통령의 집권 3년차 국정운영이 힘을 받기 위해서는 분위기 쇄신을 위한 대폭 개각 역시 불가피하다고 본다.

이와 관련해 새누리당 내 친박계 의원들의 맹목적인 대통령 감싸기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야당의 무책임한 대통령 흠집내기에 대해서는 온몸으로 방어해야겠지만 사안마다 시시비비를 가려 국민의 뜻을 대통령에게 정확히 전달할 필요가 있다.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의 경우 검찰 수사로 마무리하기 어렵다. 특검 수사를 서둘러 국정 혼란을 조기에 수습하는 것도 대통령을 돕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