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부자가 되려면

입력 2015-01-08 02:30

서울 이태원의 우사단길 끄트머리에 타이거하우스라는 작은 음식점이 있다. 평일에는 발걸음이 뜸한 골목이라 이런저런 모임의 장소로 활용된다. 이 골목에 터를 잡은 상인들은 외진 동네에서 공간 활용도를 높이려고 ‘인생학교’란 커뮤니티를 구성했다. 각자의 장기를 살려 강좌를 개설하고 사람들을 모은다. 영어회화, 불어문법, 그림수업, 실크스크린 등 시간표가 제법 빽빽하다.

무척 추웠던 6일 저녁 타이거하우스에서 열린 토론 강좌의 이름은 ‘미쳐 부자’였다. ‘미처’ 부자(富者)가 되지 못한 사람들, 그래서 부자가 되기 위해 ‘미쳐’ 보려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한다.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해 30여명이 가입했다. 10여명씩 1·2·3기로 나눠 격주 토론 모임을 갖는데 이날은 2기 멤버들이 네 번째 모인 자리였다. 주로 20, 30대 남녀가 앉아 있었다.

체육교사를 하다 15년 전 무역업에 뛰어들어 기업을 일군 사업가가 리더 역할을 맡고 있다. 미국에서 호텔경영을 공부하고 여러 업종을 경험한 뒤 창업 컨설턴트가 된 30대, 돈에 얽매인 쳇바퀴 삶이 싫어 부자가 되고 싶다는 직장인, 매달 일정액을 받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져 변화가 필요하다는 샐러리맨 등이 ‘미쳐 부자’ 모임의 구성원이다.

이태원의 작은 음식점에서 열린 토론회

토론 주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부자란 누구인가, 부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앞선 모임에서 꽤 많은 얘기가 오간 듯 이미 큰 줄기에는 의견이 모아져 있었다. 먼저 부자의 정의. 이들은 부자를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 꿈꾸던 일, 그것을 하면 행복해지는 무언가를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는 ‘경제적 자유’를 가진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 부자를 여럿 관찰한 모양인데, 이런 특징을 추려냈다. ①부자들은 운동을 많이 한다. 그래야 자신이 가진 경제적 자유를 최대한 누릴 수 있다. ②부자들은 책을 많이 읽는다. 뭔가 하고 싶은 사람의 생각은 막연하지만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구체적이다. 독서는 꿈과 목표를 더 구체화시켜준다. ③부자들은 사람을 많이 사귄다. 부자가 되는 것과 그 부를 즐기는 것은 모두 혼자 하기 어려운 일이다. 부자들은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려 끊임없이 주위를 살핀다.

이 정도로 생각이 정리됐다면 이제 어떻게 부자가 될지, 무엇을 해서 돈을 벌지 얘기할 차례일 듯한데 이들의 순서는 조금 달랐다. 돈을 어디에 쓸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돈은 쓸 곳이 분명해야 벌려는 동기가 생기고, 그렇게 쓰려는 욕구가 간절할수록 버는 과정도 더 치열해진다고 믿고 있었다.

富者와 그냥 돈 많은 사람은 달라

모임의 리더는 이렇게 말했다. “돈은 교환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뭐가 됐든 그 돈을 가장 가치 있게 교환할 대상이 머릿속에 없다면 제대로 벌 수도, 쓸 수도 없다. 많은 사람이 27세에 부자가 되기를 포기한다. 어릴 때는 누구나 가치 있는 교환 대상, 그러니까 꿈을 갖고 있는데 사회에 나오면서 접어버린다. 우리는 그러고 싶지 않다.” 이날 모임이 끝날 때쯤 한 멤버에게 물었다.

-당신은 부자가 될 것 같은가.

“그렇다. 윤곽이 잡혀 간다.”

-어떻게 돈을 벌 생각인가.

“돈 버는 방법, 아이템은 여러 가지 있다. 그것보다 꿈꿔오던 삶을 구체화하고 찾아가는 방법을 깨달아 가는 중이다.”

-언제쯤 부자가 될까.

“2∼3년 안에 1차 목표는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연간 2억∼3억원 정도 버는 게 목표다.”

갑자기 부자가 궁금해서 이 모임에 찾아간 건 ‘땅콩 회항’ 사건 때문이었다. 지난 한 달 한국사회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문제로 한바탕 떠들썩했다. 요즘은 ‘배고픈’ 사람뿐 아니라 ‘배 아픈’ 사람도 서민이란다. 그는 한국인의 99%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만한 부를 가졌으니 대단한 부자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런데 조 전 부사장 얘기를 꺼내자 이들은 망설임 없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분은 부자 아니에요. 그냥 돈 많은 사람이죠.”

태원준 사회부장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