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면 스키장을 찾는 ‘스키 마니아’들에게 국내 스키장은 어딘지 모르게 아쉬운 점들이 많다. 특히 종종 슬로프 군데군데에 미끄러운 얼음바닥의 맨살을 마주할 때면 자연설이 그리워진다. 이럴 때 인천공항에서 3시간 거리에 위치한 일본 홋카이도(北海道)로 ‘스키 투어’를 떠나보면 어떨까.
홋카이도는 연 평균 강설량이 4∼6m에 이르는 설국이다. 10월말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해 겨울철에는 거리에서 어른 키 높이만큼 눈이 쌓여있는 풍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산 중에 있는 스키장은 말할 것도 없다. 이곳에 있는 스키장은 그야말로 자연설로 가득한 ‘겨울 왕국’이다.
홋카이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루스츠 리조트의 무기도 끊임없이 내리는 눈이다. 덕분에 제설 장비가 필요 없을 정도다. 소프트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러운 자연설로 덮인 슬로프를 활주하는 쾌감은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렵다. 이곳에서는 인공눈이 굳어 만들어진 얼음 알갱이나 얼음판과 다름없는 바닥은 잊어도 좋다. 또 넉넉잡아 4월초까지 개장하기 때문에 국내에서 올 겨울 스키장을 못 가본 스키어에게 다음 겨울에 오기 전 마지막으로 슬로프를 밟아보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영화 ‘러브레터’ 촬영지인 홋카이도의 눈 내리는 슬로프에서 명대사인 “오겡끼 데스까(잘 지내나요?)”를 외쳐보는 건 어떨까. 이곳은 성수기에도 국내 스키장들에 비해 한적하다. 37개나 되는 슬로프 길이를 모두 합치면 42㎞에 달한다. 국내 유수 스키장들의 약 1.5배 크기다. 좁은 슬로프에서 충돌을 걱정하거나 리프트 입구에서 길게 줄을 설 필요도 없다. 리프트 탑승구는 전자출입체계(RFID) 시스템이라 리프트권을 휴대만 하고 있으면 된다.
루스츠 리조트는 위도가 43도로 한국보다 높아 일몰 시각이 빠르다. 겨울철 오후 4시 무렵이면 해가 지기 때문에 이곳에서 스키를 탈 때는 가급적 오전에 일찍 나오는 것이 좋다. 슬로프 개장 시간은 오전 9시.
신나게 스키를 즐겼다면 루스츠 타워 2층에 있는 노천탕을 이용해보는 것도 좋다. 내리는 눈을 가만히 맞으며 따뜻한 물에서 몸을 녹이고 있으면 묵은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이다. 젖은 머리가 얼어붙을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준비한 타월을 두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리조트 투숙객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단 이곳은 우리나라처럼 열쇠로 된 라커가 없기 때문에 카메라나 휴대전화 등 귀중품은 카운터에 맡기는 게 좋다.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은 식도락에 있다. 리조트에는 일식당, 이탈리안 레스토랑, 프랑스 레스토랑, 이자카야 등 여러 종류의 레스토랑이 있어 다양한 입맛을 충족시킨다. 그 중에서 특히 옥토버페스트의 저녁 뷔페는 꼭 한 번 가볼만하다. 시원한 생맥주와 함께 홋카이도산 대게를 원 없이 먹을 수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맛볼 수 없는 삿포로 클래식 맥주도 이곳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별미다. 1876년에 설립된 삿포로 맥주는 현존하는 일본 맥주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리조트 안에 있는 어느 레스토랑을 가도 현지에서 생산되는 삿포로 생맥주를 맛볼 수 있다. 해양 심층수로 만든다는 스스키노 맥주도 홋카이도의 자랑거리.
여유가 된다면 리조트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는 오타루에 가보는 것도 괜찮다. 특히 오타루 운하는 단골 기념사진 장소로 야경이 아름답다. 현재는 사용되지 않지만 당시의 창고 터가 그대로 남아 있어 과거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일본인 관광객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인근 상점에서 파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은 영하의 날씨 속에서도 불티나게 팔리는 인기 품목이다.
홋카이도 여행에서 기념품을 사려면 인근 메르헨거리를 걸어보자. 아기자기한 공예품들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그 중에서도 오타루오르골당은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1912년 지어진 벽돌건물인 이곳에는 3만여 종에 달하는 각종 수공예 오르골을 구경할 수 있다. 개당 1000∼4000엔 정도로 저렴하지는 않지만 기념품으로 손색이 없다.
홋카이도(일본)=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雪國, 스키 天國
입력 2015-01-08 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