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위협으로 국민 생명이 명백히 위험한 상황에선 당국이 대북전단 살포를 막는 것이 적법하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활동은 휴전선 인근 주민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이 될 수 있는 만큼 제지할 수 있다는 취지다. 민간단체의 전단 살포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정부 입장과 배치되는 것으로, 정부 대응이 주목된다.
의정부지법 민사9단독 김주완 판사는 6일 대북전단 풍선 날리기 활동 방해로 입은 정신적 피해 등에 대해 5000만원을 지급하라며 탈북자 이민복(58)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대북전단 살포로 우리 국민의 생명과 신체가 급박한 위협에 놓이고, 이는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위협의 근거로 북한이 보복을 계속 천명해 왔고, 지난해 10월 북한군 고사포탄이 경기도 연천 인근의 민통선에 떨어졌던 점 등을 들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도 대북전단 살포가 남북관계를 훼손하거나 주민 안전을 위협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것을 정부에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법원 판결과 외통위 결의안은 전날 국내 탈북자 단체가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대북전단을 살포한 뒤 남북관계에 미칠 악영향이 우려되는 가운데 나왔다. 통일부 관계자는 법원 판결 뒤 “핵심은 우리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이라면 전단 살포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라며 “그러나 이는 지금까지 정부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말했다. 정부는 그동안 사전에 일정이 알려진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선 지역 주민들과의 마찰 가능성 등을 고려해 해당 단체에 신중하게 판단해 달라는 입장을 전달해 왔다.
이번 판결로 공개적인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선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제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지만, 이에 맞춰 민간단체의 전단 살포도 점점 더 비공개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전단에 대해 물리적인 위협을 가할 수 없고 지역 주민과의 갈등 소지도 줄어들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전단 살포를 막을 명분이 없다. 더구나 사전에 일정을 고지하지 않기 때문에 물리적으로도 막기 힘들다.
전단이 비공개로 살포된다면 남북관계에 미칠 파장은 공개적인 전단 살포에 비해서는 줄어들 여지가 있다. 정부 소식통은 “민간단체가 비공개로 전단을 살포한 뒤 이를 언론 등에 알리지 않는다면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이 지금보다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유동근 기자
“국민 생명에 대한 명백하고 현존한 위협”… 법원, 대북전단 살포 제지 적법 판결
입력 2015-01-07 0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