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서 유비가 죽은 뒤 촉(蜀)의 승상 제갈량은 중원을 차지하기 위해 군사 34만명을 일으켜 위(魏)와 전쟁을 벌인다. 몇 차례 전투에서 승리한 제갈량은 영원한 맞수인 위의 사마의가 성에 틀어박혀 지구전에 들어가자 사자를 보내 싸우던지 아니면 항복하라고 권유한다. 제갈량에 버금가는 지략가 사마의, 그는 둘 다 거절하며 사자에게 뚱딴지처럼 제갈량의 근황을 묻는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주무시며, 벌이십(罰二十) 이상은 다 친히 보시고, 잡수시는 것은 하루 두어 되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자의 대답을 듣고 사마의는 휘하 장수들에게 “식소사번(食少事煩)하니 어찌 오래 가겠는가”라고 말한다(삼국지·박태원 역).
식소사번. ‘먹는 것은 적고 할 일은 많아 분주(奔走)하다’는 뜻이다. 수고는 많이 하나 얻는 것이 별로 없을 때도 이 말을 쓴다. 제갈량은 결국 오장원이라는 곳에서 병을 얻어 54세 나이로 죽는다. 바쁘고 분주함이 그의 목숨을 잡아먹은 것이다. 바쁘다는 것, 본래 허망하다고들 한다. 한자로 망(忙)은 바쁘다, 분주하다, 초조하다, 애타다, (마음이) 급하다, 빠르다 등의 의미를 갖고 있다. 그래서 ‘마음(心)이 없다(亡)’는 뜻으로, 마음이 편히 쉴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음식으로 치면 건강에 아주 해로운 정크 푸드라고나 할까.
바쁘고 분주한 삶에 대해 일찍이 여러 성인이 경고를 했다. 소크라테스는 “너무나 바쁜 삶의 허망함을 경계하라”고 했고, 마하트마 간디는 “인생에는 서두르는 것 말고도 더 많은 것이 있다”고 말했다. “군자는 마음이 평안하고 차분하나, 소인은 항상 근심하고 걱정한다.” 논어에 나오는 구절이다. 분주함이 분별력을 잃게 한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다.
무리지어 사는 양은 유순하고 서로 잘 융합하며, 공동체 생활을 잘한다고 한다. 유유자적한 양떼를 보고 있노라면 바쁘고 분주함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청양의 해에도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현실의 삶은 분주할 것이다. 그렇다고 마음마저 분주함에 찌들지는 말아야겠다. 분주함의 끝은 허망함 아니겠는가.
김명호 논설위원 mhkim@kmib.co.kr
[한마당-김명호] 분주함의 끝
입력 2015-01-07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