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첫날 간 곳은 1시간마다 버스가 한 대씩 오는, 제주에서도 오지에 속하는 마을의 게스트하우스였다. 헤이리에서 카페를 운영하던 부부가 옮겨와 1년째 컨테이너박스에 살면서 지은 집이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몇 손님이 이틀째 머물고 있었다. 그들은 재작년 마지막 날에도 이곳에 머물렀다 한다.
이곳을 책임지는 스태프는 기계적으로 몇 가지 규칙을 알려주었다. 해가 지고 이틀째 머문 손님들은 차를 끌고 8㎞ 나가 통닭을 사왔다. 즉석 파티가 벌어졌다. 나와 친구는 주인 부부가 별도로 운영하는 카페에서 엽서를 썼다. 그곳에는 타입캡슐 엽서함이 있는데 주인 부부가 보관했다가 1년 후에 보낸다 한다.
다음날 새 손님들이 왔고 하나 둘 엽서함에 관심을 갖더니 함께 엽서를 쓰기도 했다. 스태프는 제주까지 와 엽서만 쓰는 내가 궁금했는지 말을 걸어왔다. 우연히 그녀가 기타 치며 노래하는 것을 본 터라 이 기회에 나는 즉석 공연을 부탁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노래를 시작했다. 어느새 게스트하우스 손님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연이어 네 곡을 열창한 그녀는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제 노래를 부른 건 처음이에요” 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직장을 그만두고 한 달 전 제주로 와 인생 공부를 하고 있단다. 자신이 즐거운 일은 곡을 짓고 노래하는 것, 그러려면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반응을 들어야 하는데 좀처럼 용기가 서지 않았단다. 그날 밤 그녀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사람들이 내 노래를 좋아할까, 모아놓은 돈이 바닥났는데 다시 예전 일터로 돌아가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런 고민을 했다 한다.
“나보다 좀 더 사셨으니 알 거 아녜요? 어떻게 살아야 잘사는 걸까요?” 그녀가 물었다. 나는 “정답은 없어요”라고만 했다. 그걸 알면 새해 첫날 나도 여기 있지 않을 거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다음날 주인 부부에게 이곳 이름이 왜 ‘물고기나무’인지 물었다. 그들은 “물고기는 나무를 만날 수 없잖아요” 했다. 어쩐지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우린 모두 현실과 이상이라는 만날 수 없는 두 가지를 품고 살아가고 있으니까.
곽효정(에세이스트)
[살며 사랑하며-곽효정] 만날 수 없는 두 가지
입력 2015-01-07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