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문건 유출 수사] 온나라 뒤흔든 비선실세 의혹… 檢 “사실무근”

입력 2015-01-06 03:46 수정 2015-01-06 13:28
36일간의 검찰 수사 결과 정윤회(60)씨의 국정개입 의혹은 결국 낭설이었다. 소위 ‘십상시(十常侍)’의 중식당 모임, 정씨의 박지만(57) EG 회장 미행설은 모두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다만 청와대 대통령기록물의 무분별한 유출 실태가 확인됐다. 조응천(53) 전 공직기강비서관은 박관천(49·구속기소) 경정에게 지시해 박 회장에게 비밀이 포함된 청와대 문건 17건을 비선 보고했다. 대통령이 “청와대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던 박 회장은 대통령기록물 생산 당일 이 문건들을 받아보고 있었다.

조 전 비서관과 박 경정의 범행은 박 회장을 자극해 자신들의 청와대 내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 관계자는 “청와대 내부 인사를 앞둔 2013년 12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허위사실이 많고 예민한 문건들이 다수 박 회장 측에 넘어갔다”며 “이재만 총무비서관과 정호성 제1,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등 3인방을 견제하는 데 박 회장과 김기춘 비서실장을 끌어들이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건, 이렇게 만들어졌다=박 경정은 지난해 1월 1일 박동열(62)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을 만난 자리에서 “김춘식 청와대 행정관이 소위 ‘십상시’의 막내”라는 말을 전해들었다. 박 전 청장은 “동국대 후배 김 행정관을 두세 번 만났고, 동문회 식사를 산 적이 있다”고 했다. 이어 “이정현 홍보수석이 다른 수석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 김기춘 비서실장 사퇴설이 있다”는 찌라시 내용까지 떠들었다.

박 경정은 박 전 청장의 말에 창작을 더해 문건을 만들었다. 박 경정은 “정윤회와 ‘십상시’의 정기 모임이 있다” “정씨가 김기춘 실장을 그만두게 할 예정”이라는 식으로 과장했다. 박 전 청장이 개인적으로 국세청 인사를 평가한 부분은 정씨가 “국세청이 엉망이다. 국세청장을 교체해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각색됐다.

박 경정은 짜깁기한 문건의 신뢰도를 높이려 욕심을 부렸다. 닷새 뒤인 1월 6일 조 전 비서관에게 보고할 때 “십상시 모임의 ‘스폰서’ 역할인 박 전 청장이 모임에 참석해 들은 이야기”라고 했다. 조 전 비서관은 청와대 비서진이 세계일보를 고소한 뒤에도 “신빙성은 6할”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검찰에 불려온 ‘제보자’ 박 전 청장과 그의 정보원 6명은 일제히 “찌라시였다”고 했다.

◇문건, 이렇게 유통됐다=조 전 비서관은 박 경정이 문건을 작성해 보고할 때마다 “박지만 회장에게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박 경정과 박 회장의 측근 전모씨를 경유하는 비선 보고는 2013년 6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계속됐다. ‘정윤회 문건’을 포함해 박지만 부부 주변 인물의 동향보고서 9건 등 총 17건의 대통령기록물이 박 회장에게 넘어갔다. 이 중 10건은 공무상 비밀에 해당한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이렇게 전달된 문건에는 대통령 친인척 관련 내용만 있었던 게 아니다. 중국 현지 유력 인사의 집안 내력, 기업인들이 조세 포탈에 연루됐다는 첩보까지 박 회장 측에 흘러들어갔다. 정씨에 대한 비방 문건은 2013년 12월부터 지난해 1월 사이 집중적으로 전달됐다. 검찰 관계자는 “미행설이 구체화된 시기 역시 묘하게 지난해 1월이었다”고 말했다.

세계일보로의 유출 경로는 그간 검찰이 밝힌 그대로였다. 박 경정이 서울지방경찰청 정보분실장실에 보관한 26건을 한모(45) 경위가 무단으로 복사했다. 박 경정은 문건들을 수시로 출력, 쇼핑백에 담아 가지고 나온 것으로 조사됐다. 한 경위가 최모(사망 당시 45) 경위와 기업체 직원에게 전달했고, 최 경위는 이를 세계일보에 넘겼다. 세계일보 조모 기자는 최 경위와 1년간 550회 통화했다.

이경원 문동성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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