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경기도 이천의 여고생 A양(17)에게 배달된 중국행 편도 항공권은 미끼였다. A양은 앞서 인터넷에서 공짜 중국 관광을 시켜준다는 광고를 보고 응모했다.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 신청하면 당첨 여부를 알려오는 방식이었다. 돈 한푼 안 들이고 해외여행을 갈 수 있다니 밑져야 본전이었다. 게다가 당첨됐다며 진짜 항공권이 왔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A양은 이 모든 게 며칠 뒤 벌어질 인질극의 시작임을 짐작도 못했다.
지난달 29일 A양은 혼자 중국 남방항공 여객기를 타고 선양 타오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부모에게는 허락을 받으려고 거짓말을 했다. 경기도에서 모범학생들을 뽑아 중국 관광을 시켜주는데 친구들과 함께 그중 한 명으로 뽑혔다고 속였다. 관공서 주관 아래 여러 명이 같이 간다는 말에 부모는 안심했다.
선양에서 A양을 마중한 건 임모(51)씨였다. 한국인인데도 조선족처럼 억양이 셌다. 그는 처음 며칠간 이곳저곳 데리고 다니며 구경시켰다. 잠은 한 아파트에서 자도록 했다. A양에게 거실을 쓰게 하고 자신은 안방을 썼다. A양은 매일 휴대전화로 부모에게 안부를 전했다.
선양이 관광지에서 지옥 같은 곳으로 변한 건 입국 엿새 만인 지난 4일이다. 돌변한 임씨는 휴대전화를 빼앗고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숙소는 감옥이 됐다.
그날 오후 4시42분쯤 A양 어머니에게 딸의 전화번호로 낯선 남성이 전화를 걸어왔다. 임씨였다. 그는 “당신 딸을 납치해 데리고 있다”며 600만원을 요구했다. A양 어머니는 조선족 같은 말투에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이라 생각하고 무시했다. 실제 상황임을 안 건 A양의 메시지를 본 뒤였다. A양은 가지고 간 노트북 컴퓨터로 임씨 몰래 부모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임씨는 A양에게서 노트북은 압수하지 않았고, 그 집에선 무선 인터넷이 잡혔다. A양은 부모에게 사실을 털어놨고 부모는 경찰에 신고했다.
임씨가 다시 연락해온 건 오후 8시쯤이었다. 그는 카카오톡 메시지로 재차 돈을 요구하며 “돈을 안 보내면 딸을 다른 곳으로 보내겠다”고 협박했다. 인신매매를 암시하는 말이었다. A양 부모는 그 사이에도 딸과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옆에서 경찰이 조언했다. 경찰은 부모를 시켜 A양에게 아파트 주변 건물과 전경 등을 찍어 보내게 했다. A양은 임씨 눈을 피해 노트북 컴퓨터에 달린 카메라로 거실 창밖 풍경을 촬영해 보냈다. 임씨는 방에서 A양 부모와 대화 중이었다.
경찰은 사진과 A양의 컴퓨터가 접속한 인터넷 서버 주소(IP)를 현지 영사관과 중국 공안에 보내 감금 장소를 특정했다. 공안은 5일 새벽 1시쯤 A양이 갇힌 아파트 18층 오른쪽 집을 덮쳐 임씨를 체포했다. 부모가 신고한 지 8시간 만이었다. 집에는 임씨와 A양만 있었다. A양은 다친 데 없이 구출됐다.
이동호 이천경찰서 수사과장은 “공안 수사가 마무리되면 임씨를 한국으로 송환해 인질강도 혐의로 형사 처벌할 예정”이라며 “조직적 범행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A양 어머니는 6일 선양으로 가 딸을 데리고 올 예정이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中 공짜 여행’에 속은 여고생 구사일생
입력 2015-01-06 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