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황병서는 월북하다 사살된 빨치산의 아들이다”

입력 2015-01-06 03:32
지난해 10월 4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전용기를 타고 인천에 온 황병서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경호원을 대동한 채 송도 오크우드호텔에 들어서고 있다. 국민일보DB

베일에 싸인 북한 2인자 황병서(66)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6·25전쟁 이후 월북하다 휴전선 부근에서 사살된 빨치산의 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비전향장기수 아들이라는 세간의 소문과 일부 언론 보도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정보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황 총정치국장이 북한 최고위직에 오른 배경에는 6·25전쟁에 인민군 참모장급 간부로 참전했다 전사한 큰아버지의 존재가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복수의 정보 당국 관계자는 5일 “황 총정치국장의 아버지를 빨치산 출신의 ‘황재길’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1985년 대전형무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전향장기수 ‘황필구’의 아들이라는 설(說)에 대해선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다. 다만 당시 빨치산 인사들은 가명을 많이 썼기 때문에 황재길이란 이름이 본명인지는 확실치 않다고 전했다.

정보 당국에 따르면 황재길은 빨치산 활동을 하다 6·25전쟁이 터지자 인민군에 입대해 정찰대장을 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남한에 남아 첩보활동을 계속했으며 1956년 북한으로의 잠입을 시도하다 휴전선 인근에서 사살됐다. 황재길의 고향이나 활동 지역 등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이런 가운데 북한군 상좌(한국군 대령과 중령 사이) 출신으로 1995년 탈북한 최주활 탈북자동지회장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황 총정치국장의 큰아버지는 6·25전쟁 때 인민군의 참모장급 간부로 참전했다가 사망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1959∼67년 평양외국어유자녀학원(현 평양외국어학원)을 함께 다닌 황승미(65·여)가 황 총정치국장과 친사촌 사이”라면서 “황승미에게 아버지가 6·25전쟁 때 인민군 참모장으로 참전해 마산에서 전사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황 총정치국장의 전사한 큰아버지는 6·25전쟁 당시 인민군 보위성 부총참모장을 지낸 황호림(黃虎林)일 가능성이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위원회가 펴낸 ‘한국전쟁사’의 당시 북한군 주요 간부 명단을 보면 김일성 원수를 포함한 간부 73명 중 황씨는 한 명뿐이다. 황호림은 소련군 출신으로 전쟁 때 계급은 소장이었다. 나이는 30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남정옥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은 “마산에서는 미군 투입 이후 인민군이 후퇴할 시기를 놓쳐 고위급 간부가 많이 사망했다”며 “황호림의 사망 여부에 관한 기록 자체가 없어 전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주요 간부 73명을 제외한 인민군 영관급 중에도 황씨 성을 가진 사람의 전사 기록은 나타나지 않는다.

황승미가 다녔다는 평양외국어유자녀학원은 주로 전사한 인민군 간부의 자녀를 입학시켜 교육한 곳이다. 2010년 통일부가 펴낸 ‘북한기관 단체별 인명집’에는 평양의 종합회관인 ‘경흥관’의 초급 당비서에 황승미의 이름이 올라 있다. 그는 90년대 중반엔 평양 보통강변의 유명 음식점 ‘청류관’에서 조직비서를 했다.

결국 황 총정치국장은 6·25 때 전사한 큰아버지와 목숨을 걸고 빨치산·인민군 활동을 했던 아버지의 후광으로 출세 입지를 다진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의 직계 후손이 아닌 사람이 북한 당·군에서 고위직에 오르려면 선대가 항일 빨치산 투쟁을 한 ‘빨치산 줄기’이거나 6·25전쟁에서 공을 세우거나 전사한 ‘낙동강 줄기’여야 한다. 남 연구원은 “황호림쯤 되는 인물이 집안에 있어야 황 총정치국장이 그 자리에 올라갔다는 게 설명이 된다”고 말했다.

황 총정치국장은 지난해 10월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 깜짝 방문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김정일 집권 시기에는 존재감이 크지 않았으나 김정은 시대 들어 급부상했다. 지난해 4월 불과 11일 만에 상장(한국군의 중장)에서 차수(대장 위의 계급)로 두 계급 진급했다. 하지만 고향이나 출신성분 등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그의 정치적 경쟁자인 최룡해가 항일 빨치산 1세대인 최현의 아들로 널리 알려진 것과 대조적이었다.

아시안게임 폐막식 방문 이후 전북 고창군 성내면 조동리의 평해 황씨 가문에서는 황 총정치국장이 85년 숨진 비전향장기수 황필구의 아들이 아니냐는 말이 돌았다. 1916년생인 황필구는 광복 전 월북했다가 한국전쟁 이후 남파 간첩으로 붙잡혀 1959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26년간 사상 전향을 하지 않고 수형생활을 하다 1985년 대전형무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황씨 집안에선 황필구가 월북 당시 아내와 아들(병순·42년생), 딸을 데려간 것으로 기억한다. 황 총정치국장은 49년생이다.

황병서가 평해 황씨 가문이라는 추정은 2000년 이산가족상봉 때 북측 상봉단의 일원으로 남한을 방문한 친척 황억구씨가 한 것으로 전해진 말이 계기가 됐다. 황필구와 6촌 관계인 억구씨는 ‘필구 가족은 북에서 영웅 칭호를 받고 잘살고 있다. 아들을 하나 더 두어 둘인데 그중 하나가 김정일의 비서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억구씨를 만난 여동생 가운데 한 명은 최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했다. 필구씨를 자주 면회했다는 여동생의 아들 J씨도 “황병서는 뉴스를 보고서야 알았다. 전혀 모르는 얘기”라고 말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