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도 계속되는 ‘甲질’

입력 2015-01-06 01:38
골프존 점주 모임인 시뮬레이션골프협회 회원들이 5일 서울 청담동 골프존 서울지사 앞에서 이 회사의 불공정 영업행위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서영희 기자

2년여 전 남양유업 영업사원의 욕설 파문과 젊은 편의점주의 잇따른 자살로 ‘갑(甲)의 횡포’는 우리 사회의 이슈로 떠올랐다. 두 사건을 계기로 사회 곳곳에 숨겨진 갑의 횡포는 수면 위에 떠올랐고 공정거래위원회와 검찰의 처벌이 이어졌다. 그러나 공기업과 사기업 가릴 것 없이 여전히 사회적 약자인 ‘을(乙)’을 대상으로 한 이들의 ‘갑질’은 계속되고 있다. 수십억∼수백억원의 과징금을 물어도 그때뿐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5일 오후 서울 청담동 골프존 서울사무소 앞에 스크린골프장 점주 20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골프존이 1년 전 발표한 상생 약속이 무색하게 또 다시 갑의 횡포를 부리고 있다고 밝혔다. 골프존은 현 정부 들어 ‘창조경제의 아이콘’으로 각광받았지만 비약적 성장 이면에는 갑의 횡포가 있었음이 공정위 조사 결과 밝혀졌다. 공정위는 지난해 5월 골프 시뮬레이션 시스템을 ‘끼워팔기’한 혐의 등으로 골프존에 4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 조사가 진행 중이던 같은 해 1월 골프존은 점주들과의 동반성장 방안을 내놓았다. 스크린골프 시장이 포화상태인 점을 감안, 2014년 4월∼2015년 3월 신규 영업을 중단하고 보상판매 가격을 인하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채 1년을 가지 못했다. 골프존은 지난해 말 신제품 시뮬레이션 제품인 ‘비전 플러스’를 출시하면서 이용료를 1인당 2000원에서 4000원으로 인상했다. 또 신규 영업을 중단하겠다는 약속과 달리 오는 15일에는 대전 본사에 27개의 골프 스크린을 갖춘 대형 직영점을 개설할 예정이다. 골프존 김영찬 회장은 2013년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 반성의 뜻을 나타내며 상생을 약속했지만 공정위 처벌 이후 골프존의 행보는 그와는 정반대였다. 골프존은 공정위 과징금 처분이 부당하다며 대형 로펌 김앤장을 통해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국회 업무 강화를 이유로 보좌관 출신을 영입했다. 골프존 점주 모임인 시뮬레이션골프협회 김철 사무국장은 “골프존이 ‘국회 로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공정위에 걸렸다’는 반성을 하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골프존 관계자는 “대전 본사에 골프문화의 대중적 확산을 위해 조이마루센터를 만들었는데 여기에 일부 시설 이용에 대해 연간회원권을 발급하려는 것”이라며 “대형 직영점 개설은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끊임없는 갑의 횡포는 대형 공기업도 빠지지 않고 있다. 공정위는 이날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수자원공사가 공사대금을 부당하게 낮추는 등의 불공정 행위에 대해 과징금 156억원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LH는 48개 공사 진행 과정에서 설계변경 등을 이유로 시공업체에 부당하게 49억원의 공사 금액을 떠넘긴 것으로 드러났다. 대형 건설사인 시공업체는 LH로부터 ‘후려치기’를 당해 줄어든 공사비를 중소형 하청업체에 전가했다. 이 같은 먹이사슬은 결국 공사장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의 피해로 귀결됐다. 공정위 관계자는 “대형 건설사들이야 공사비가 1억∼2억원 깎여도 하청업체에 떠넘기면 되지만 맨 아래 하청업체는 고스란히 그 피해를 입게 된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지난달에도 한국전력, 가스공사 등 굴지의 공기업들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불공정 행위를 적발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