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문건 유출 수사] 온나라 뒤흔든 비선실세 의혹… 檢 “사실무근”

입력 2015-01-06 11:18 수정 2015-01-06 13:22
36일간의 검찰 수사 결과는 ‘정윤회(60)씨의 국정개입이 없었다’는 것이다. 나라를 흔든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문건’의 출발점은 증권가 풍설이었다. 정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57) EG 회장을 미행했다는 이야기도 사실무근이었다.

청와대 대통령기록물의 무분별한 유출 실태는 확인됐다. 조응천(53) 전 공직기강비서관은 박관천(49·구속기소) 경정에게 지시해 오랫동안 박 회장에게 청와대 문건 17건을 비선 보고했다. 대통령이 “청와대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던 박 회장은 대통령기록물 생산 당일 이 문건들을 받아보고 있었다.

검찰은 박 경정과 조 전 비서관이 박 회장을 이용해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의도에서 문건을 빼냈다며 다음과 같이 문건 작성·유출 경위를 설명했다.

◇문건, 이렇게 만들어졌다=박 경정은 지난해 1월 1일 박동열(62)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을 만난 자리에서 “김춘식 청와대 행정관이 소위 ‘십상시’의 막내”라는 말을 전해들었다. 박 전 청장은 “동국대 후배 김 행정관을 두세 번 만났고, 동문회 식사를 산 적이 있다”고 했다. 이어 “이정현 홍보수석이 다른 수석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 김기춘 비서실장 사퇴설이 있다”는 찌라시 내용까지 떠들었다.

귀가 번쩍 뜨인 박 경정은 박 전 청장의 말에 창작을 더해 문건을 만들었다. 박 경정은 “정윤회와 ‘십상시’의 정기 모임이 있다” “정씨가 김기춘 실장을 그만두게 할 예정”이라는 식으로 과장했다. 박 전 청장이 개인적으로 국세청 인사를 평가한 부분은 정씨가 “국세청이 엉망이다. 국세청장을 교체해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각색됐다.

박 경정은 짜깁기한 문건의 신뢰도를 높이려 욕심을 부렸다. 닷새 뒤인 1월 6일 조 전 비서관에게 보고할 때 “십상시 모임의 ‘스폰서’ 역할인 박동열 전 청장이 모임에 참석해 들은 이야기”라고 했다. 조 전 비서관은 청와대 비서진이 세계일보를 고소한 뒤에도 “신빙성은 6할”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검찰에 불려온 ‘제보자’ 박 전 청장과 그의 정보원 6명은 일제히 “찌라시였다”고 했다.

박 경정은 세간의 미행설을 궁금해하던 박 회장에게도 경기도 남양주 카페의 주인과 아들을 운운하며 ‘필력’을 발휘했다. 박 회장은 이후 정씨의 미행설을 사실로 믿게 됐다. 하지만 박 경정은 박 회장이 이 문건을 청와대에 전달하려 할 때에는 적극 만류했다.

◇문건, 이렇게 유통됐다=조 전 비서관은 박 경정이 문건을 작성해 보고할 때마다 “박지만 회장에게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박 경정과 박 회장의 측근 전모씨를 경유하는 비선 보고는 2013년 6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계속됐다. ‘정윤회 문건’을 포함해 박지만 부부 주변 인물의 동향보고서 9건 등 총 17건의 대통령기록물이 박 회장에게 넘어갔다. 이 중 10건은 공무상 비밀에 해당한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이렇게 전달된 문건에는 대통령 친인척 관련 내용만 있었던 게 아니다. 중국 현지 유력 인사의 집안 내력, 기업인들이 조세포탈에 연루됐다는 첩보까지 박 회장 측에 흘러들어갔다. 정씨에 대한 비방 문건은 2013년 12월부터 지난해 1월 사이 집중적으로 전달됐다.

세계일보로의 유출 경로는 그간 검찰이 밝힌 그대로였다. 박 경정이 서울지방경찰청 정보분실장실에 보관한 26건을 한모(45) 경위가 무단으로 복사했다. 한 경위가 최모(사망 당시 45) 경위와 기업체 직원에게 전달했고, 최 경위는 이를 세계일보에 넘겼다. 세계일보 조모 기자는 최 경위와 1년간 550회 통화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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