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끝나지 않은 과라니족의 비극

입력 2015-01-06 01:11
중남미 원주민 과라니족에 대한 선교와 학살을 그린 영화 ‘미션’의 한 장면(위). 과라니족은 지금도 브라질 등에서 차별과 가난으로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국민일보DB

영화 ‘미션’(1986)에 등장하는 중남미의 원주민 과라니(Guarani)족은 국제사회에서는 잊혀진 존재다. 그들 대부분이 18세기 스페인 정복기 이후 학살되거나 스페인인과의 결혼으로 혼혈화된 상태다. 하지만 일부는 살아남아 브라질과 파라과이 등지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명맥을 잇는 그들의 삶 역시 결코 평탄치가 않다. 불청객들로 인한 그들의 비명은 두 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계속되고 있다.

파라과이와 국경이 맞닿은 브라질 남부의 마토 그로소 도 술주(州)에는 브라질 내 과라니족이 집단거주하고 있다. 주 정부는 최근 이들과 관련해 충격적인 보고서를 내놓았다. 뉴욕타임스(NYT)가 4일(현지시간) 소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4만5000명의 부족민 중 2004년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이 500명 이상이다. 지난해의 경우 9월까지 집계된 자살자 수가 36명이고, 2013년에는 49명에 달하는 등 ‘죽음의 행렬’은 최근까지 그치지 않고 있다. 브라질 중앙정부도 과라니족의 자살률이 인구 10만명당 30명으로 브라질 평균의 12배에 달한다고 인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정 사회의 자살률이 이렇게 높은 전례가 없다며 원인 진단과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지 전문가들은 높은 자살률의 원인이 “터전을 잃고 주변부의 삶을 살아가기가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브라질 정부는 100년 전부터 과라니족이 살아가던 터전에 대해 비원주민 농장주나 농민들에게 사용권을 넘겨왔다. 때문에 과라니족은 다른 지역으로 쫓겨나 살거나 가난한 소작농으로 살아야 했다.

원주민을 2등 국민으로 취급하는 차별은 더 무서운 적이었다. 브라질 정부가 1988년 과라니족에게 옛 터전을 되찾을 권리를 부여했지만, 기존 농장주나 농민들의 반발로 인해 여전히 소유권이 넘어가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 이후 차별만 더 심해졌다. 이에 낙심한 원주민들이 “미래가 없다”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특히 원주민 젊은이들이 희망을 버리고 있다.

상파울루대 마리아 알칸타라 인류학과 교수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원주민 젊은이들은 현대적 삶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장·노년 세대의 전통적 삶에도 익숙하지 못하다”면서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한다는 좌절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고 전했다.

젊은 원주민들의 좌절은 비단 브라질뿐만 아니다. NYT에 따르면 호주의 애보리진 원주민의 경우 25∼29세 젊은이들의 자살률이 전체 인구에 비해 4배 높다. 미국 인디언도 15∼34세 자살률이 인구 평균보다 2.5배 더 높다. 과라니족과 마찬가지로 주류 사회의 차별과 원주민으로서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목숨을 끊고 있다.

결국은 주류 사회가 소수자에 대한 선입견이나 차별을 걷어내고, 적극적으로 포용해야만 해결이 가능한 문제다. 더불어 원주민들을 위한 ‘교육’ 시스템을 강화해 원주민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는 것도 절실하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