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문건 유출 수사] 용의주도 박관천… 제 꾀에 넘어갔다
입력 2015-01-06 03:48 수정 2015-01-06 12:59
‘정윤회 문건’의 작성자 박관천(49·구속기소) 경정은 문건 생산부터 유출 논란이 불거진 이후 대처까지 용의주도했다. 당초 청와대가 내부 문건 유출자로 자신을 지목하자 이를 무마하기 위한 ‘트릭’도 썼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결정적 실수’를 범하면서 결국 제 발목을 잡는 결과를 낳았다.
박 경정은 지난해 4월 세계일보가 문건 일부를 보도하자 세계일보 기자를 접촉해 유출된 문건 사본을 회수했다. 이어 허위 내용의 유출경위서를 작성한 뒤 6월 초 문건 사본과 함께 청와대에 제출했다. 경위서에는 ‘청와대 내부의 제삼자가 문건을 훔쳐 유출했다’고 적었다. 박 경정은 지난달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후에도 ‘문건 도난설’을 거듭 주장했다.
그런데 박 경정이 자신의 혐의를 벗기 위해 청와대에 보고했던 문건 사본이 도리어 혐의를 밝히는 핵심 단서가 됐다. 회수한 문건들 속에 박 경정이 2011년 1월∼2013년 3월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지수대) 대장으로 재직하면서 작성했던 수사첩보서 9건도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박 경정은 2013년 4월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으로 발탁돼 청와대에 입성할 당시 그 이전 근무지에서 만들었던 문건은 전혀 갖고 들어가지 않았다. 즉 제3의 인물이 청와대 내부 책상에서 문건을 빼돌렸다면 그 속에 지수대장 때의 문건이 끼어있을 수는 없었다. 검찰은 청와대로부터 넘겨받은 문건 분석 과정에서 이를 포착하고 박 경정을 추궁한 끝에 ‘지난해 2월 청와대에서 나올 때 갖고 나온 문건과 (외부에 있던) 지수대장 시절의 문건 등을 합해 서울지방경찰청 정보1분실로 옮겨놨다’는 자백을 받았다.
박 경정은 당초 ‘정윤회의 박지만 미행설’에 대해서도 관련성을 부인했다. 그러다 검찰이 박지만(57) EG 회장으로부터 제출받은 ‘미행 보고서’를 내밀자 크게 당황해 말문이 막혔다고 한다. 자신이 제대로 보고서 양식도 갖추지 않고 비선 보고한 문서를 박 회장이 9개월 동안이나 보관했다가 검찰에 자진해서 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박 경정은 결국 지난달 17일 자신이 미행 보고서 작성자란 사실도 시인했고, 검찰은 그 다음날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 관계자는 5일 “박 경정이 ‘보통 사람’은 아니었지만 예기치 못한 실수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 관련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