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들이 부조리에 맞설 가장 강력한 무기는 '결집된 힘'이다. 하지만 방향이 엇나가거나, 형성 과정이 비합리적이라면 이 힘은 사회적 골칫거리가 된다. 집단분노가 짧은 '카타르시스(감정 정화)'를 맛본 뒤 흐지부지될 경우 남는 건 사회의 혼란과 그 대상자들의 억울함뿐이다.
◇‘다혈질 아마추어’의 함정=2005 년 말 한국사회는 황우석 박사의 맞춤형 배아줄기세포가 원래 존재하지 않았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황 박사는 “소중한 진리를 성찰할 여유가 당시 제게 없었다”며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황 박사 지지자들은 맞춤형 배아줄기세포가 허위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들은 논문 조작을 폭로한 프로그램 제작자의 목숨을 위협했고, “난자 채취 과정에 윤리적 문제가 있었어도 국익을 위해 진실을 덮었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이 사태를 두고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총화단결’을 실현하는 듯한 유사 파시즘적 분위기”라고 논평했다.
힙합가수 타블로(본명 이선웅·35)는 2009년 미국 스탠퍼드대 졸업 경력을 놓고 홍역을 치렀다.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란 집단이 그의 학력 위조 의혹을 제기했다. 루머에 휩쓸린 특정 집단의 분노 앞에서 타블로가 제시한 객관적 증거는 의미가 없었다. 2012년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타진요 회원들이 유죄 판결을 받고서야 소동은 일단락됐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분노는 시멘트처럼 사람들을 묶어주는 역할을 하지만 ‘잘못된 분노’에 대한 경험이 계속 쌓이면 ‘나와 함께 분노하는 사람’에 대한 불신이 생겨난다”며 “이러한 불신은 분노에 대한 ‘냉소’로 이어져 사람들의 집단분노를 해체시켜 버린다”고 말했다.
똘똘 뭉친 분노가 권력이 아닌 ‘더 약한 사람’을 겨냥하는 경우도 있다. 별다른 죄책감 없이 남기는 ‘악플’, 식당종업원이나 전화 상담원 등을 향한 습관적 분노는 사회의 건전성을 갉아먹는다. 전 교수는 “분노의 창이 원인 제공자가 아닌 자신보다 약한 자에게 향하면 집단분노는 감정적 배설행위로 변질된다”고 지적했다.
◇‘냄비 근성’ 닮은 짧은 수명=엄청난 폭발력을 보이던 집단분노가 짧은 카타르시스만 남긴 채 잦아드는 모습을 우리는 여러 차례 목격했다. 제도 개선 등 본질적인 해결로 이어지지 못하고 쉽게 잊힌다는 점에서 과거 자조적 용어로 쓰였던 ‘냄비 근성’과 닮았다.
1993년 서해 훼리호가 침몰하고, 94년 삼풍백화점과 95년 성수대교가 붕괴했다. 국민들은 분노했고 “안전한 나라를 만들라”며 아우성을 토해냈지만, 지난해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와 세월호 침몰 참사를 지켜봐야 했다. 집단분노의 에너지가 본질적인 해결책으로 발전하지 못한 결과다.
쉽게 달아오르는 만큼 손쉬운 희생양 찾기에 머무는 경우도 많다. 세월호 참사 때 학생들을 인솔했던 교감선생님,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 때 행사를 담당했던 직원은 이런 분노의 화살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불의를 보면 끓어오르는 용광로의 이면에는 카타르시스를 좇는 집단의 본성이 숨어 있다. 인문학자 정지우씨는 지난해 출간한 ‘분노사회’에서 “개인들이 자기 정체성을 수립하지 못한 채 맹목적으로 집단에 정체성을 맡길 경우 맹신과 증오로 이어진다”며 “지역·성·종교·이념·계층·세대 등에서 한국 사회는 분노를 넘어 ‘증오사회’로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큰 사고가 발생하면 그런 사고가 줄어들도록 힘을 모아야 하는데 우리는 정쟁을 한다. 누구는 단식하는데 누구는 폭식 투쟁하는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면 사고를 최소화하려는 노력마저 물거품이 된다”고 말했다.
양민철 정부경 전수민 기자 listen@kmib.co.kr
[한국사회 집단분노-분노의 함정] ‘희생양’ 만들 위험
입력 2015-01-06 03:13 수정 2015-01-06 1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