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성기철] 최고위원-최저위원

입력 2015-01-06 02:10

1955년 반(反)이승만 세력이 모여 결성한 민주당은 지도체제로 ‘대표-최고위원’ 제도를 채택했다. 합의제로 운영되는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한 것이다. 신익희가 대표, 조병옥 장면 곽상훈 백남훈이 최고위원을 맡았다. 민주국민당, 자유당 탈당 의원, 흥사단 계열 등 다양한 세력을 대변하는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지명도가 꽤 높아 신익희와 조병옥의 경우 각각 56년과 60년 대선에 출마해 이승만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민주당은 이후 60년 동안 이합집산을 거듭한 끝에 새정치민주연합에 이르렀다. 지도체제는 당시 실력자들 간 권력관계에 따라 대표-최고위원 제도와 총재-부총재 제도 중 하나를 선택했다. 일반적으로 전자는 집단지도체제, 후자는 단일지도체제이다. 야당 시절 김영삼과 김대중은 총재, 이철승은 대표였다.

박정희가 이끈 민주공화당과 전두환의 민주정의당은 대통령이 총재를 맡고, 중량급 인사 가운데 당의장 혹은 대표를 지명해 집권당을 관리토록 했다. 노태우정권은 3당 통합으로 거대 민주자유당을 창당해 김영삼 대표-박태준 김종필 최고위원 체제를 구축했다. 대통령의 집권당 총재 겸임은 김대중이 마지막이었다. 이후에는 여야 불문하고 전당대회에서 경선으로 대표와 최고위원을 뽑고 있다. 당연히 전당대회에 대한 국민 관심이 커졌으며, 이런 분위기는 대통령 후보 선출로 이어진다. 지도부 선출 전당대회가 대통령 후보감을 발굴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새정치연합의 2·8전당대회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으나 선거 분위기가 좀체 달아오르지 않는다. 문재인과 박지원이 맞붙은 대표 경선은 그나마 관심을 끌지만 9명이 출마한 최고위원 경선은 언론의 주목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핵심 당직자는 “흥행이 이렇게 안 되는 전당대회는 처음 본다”며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최고위원 선거를 나는 최저위원 선거라 부른다”고 말했다.

흥행 부진은 당과 후보들이 자초했다. 야당 전당대회의 단골메뉴인 혁신과 통합은 뒷전이고, 기득권 지키기와 분당설로 갑론을박하고 있는데 누가 박수를 치겠는가.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