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1) 극장의 추억

입력 2015-01-06 02:20
1960년대의 대한극장

이제는 집에 앉아 극장 못지않은 영상과 음향으로 영화를 즐긴다. 그러나 얼마 전만 해도 극장 없는 영화는 상상할 수 없었다. 특히 궁핍하던 시절 거의 유일한 문화 향유의 장(場)으로서 극장의 위상은 대단했다. ‘시네마 키드’였던 나와 극장의 관계도 대단했다. 가히 ‘운명적’이랄 만큼.

나는 중고교 때 필동에서 비원 옆에 있는 학교까지 일직선으로 난 길을 걸어서 통학했다. 당시 내 등굣길을 볼작시면 이랬다. 집에서 나와 대한극장을 거쳐 스카라, 명보극장을 지난다. 그런 뒤 청계천과 종로 사이 세기극장(현 서울극장) 앞으로 해서 종로를 건넌다. 그러면 마주보고 사이좋게 서 있는 피카디리, 단성사와 만난다. 학교를 오가자면 이 모든 극장들에 붙어 있는 간판과 사진을 싫어도 보게 된다. 상영작은 물론 다음 프로까지 뜨르르 꿸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극장들은 모두 ‘개봉관’이었다. 지정된 상영시간에 지정된 좌석에 점잖게 앉아 영화를 보는 극장. 이곳에서 종영된 영화는 일정 기간 뒤 ‘재개봉관’에서 재상영됐다. 또 재개봉관을 통과한 필름은 ‘동시상영관’으로 갔다. 한꺼번에 두 편의 영화를 돌리는 곳. 이때쯤 되면 필름은 낡아서 ‘비가 오거나’ 영화 중간에 끊기기 일쑤였다.

홈시어터가 널리 보급되고 최신식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즐비한 요즘 이런 ‘옛날 극장’들은 흘러간 유물이 됐다. 하지만 더 이상 극장이 영화를 보기 위한 필수요소가 아니라 해도 영화 소비의 주 통로가 여전히 극장인 한 ‘극장의 추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듯하다.

김상온(프리랜서 영화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