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정부 집권 3년차-(상) 이명박 정부] 독단적 국정운영·측근비리로 휘청… 레임덕 본격화

입력 2015-01-05 03:25

한국은 5년 단임 대통령제라는 특이한 권력구조를 갖고 있다. 5년 임기의 반환점을 도는 집권 3년차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시기다. 정권의 사활이 걸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대 정부 임기 3년차의 공통점은 부실한 남북문제 대응, 여권 내부 계파 갈등, 대형 게이트, 인사실패 등으로 레임덕을 자초했다는 점이다. 박근혜정부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부분이다.

이명박정부는 집권 3년차였던 2010년 독단적인 국정운영과 측근비리, 북한의 잇따른 군사도발로 휘청거렸다. 그 결과는 6·2지방선거 참패, 세종시 수정안 국회 부결 등으로 나타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 개편과 개각, 대북 강경책으로 정국 주도권을 쥐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친이(친이명박)계 인사들을 내각에 전진 배치하면서 계파 갈등을 자극했고, 민간인 사찰 파문이 ‘영포 게이트’ 및 여권 내 권력투쟁으로 비화되면서 급격히 레임덕 국면으로 빠져들었다. 그해 말 유력 대선주자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을 공식 출범시키며 대권 행보를 본격화했다.

◇독단적 국정운영과 인사 실패에 등 돌린 민심=3월 26일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치러진 6·2지방선거에서 집권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은 대패했다. ‘북풍’을 타고 보수층이 결집하는 분위기가 있었음에도 ‘MB정부 심판론’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는 세종시 수정안, 4대강 사업 등 이명박정부의 밀어붙이기식 국정운영에 대한 경고로 해석됐다. 당시 TK(대구·경북)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민심 이반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세종시 수정안은 6월 29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도 부결됐다. 이로써 2009년 9월 정운찬 국무총리의 세종시 수정 발언으로 촉발된 논란은 종지부를 찍었다. 하지만 여권 내 분열상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친이·친박 대결 구도는 더욱 선명해졌고 불신의 벽은 두꺼워졌다. 친이계는 당시 박근혜 의원이 본회의에서 직접 반대토론에 나선 것을 두고 “항복하고 물러나는 사람의 등에 칼을 꽂았다”고 불쾌감을 표출했다.

이 전 대통령은 개각과 청와대 개편으로 분위기를 일신하고자 했다. 8·8개각을 통해 당시 48세였던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를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다. 7·29재보선에서 살아돌아온 이재오 의원을 특임장관에 임명하는 등 ‘마이웨이’ 행보를 이어갔다. 하지만 김 총리 후보자는 임명 21일 만에 ‘박연차 게이트’ 연루설에 휘말려 자진사퇴했다. 3기 내각은 출범부터 삐걱거렸다.

박 대통령은 전국단위 선거가 없는 올해 노동, 연금 등 각 분야의 개혁과제를 적극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하나같이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것들이어서 사회적 합의 없이 밀어붙였다가는 후유증과 부작용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은 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명박정부가 추진했던 세종시 수정안은 공무원들의 지지를 받았으나 정치권이 반대했던 사안”이라며 “박근혜정부는 공무원연금, 규제개혁 등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과제를 추진하고 있어 이들의 도움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김 전 수석은 “결국은 청와대가 나서야 한다”며 “정무·민정·홍보 등 청와대 모든 참모들이 적극적으로 자기 역할을 하면서 상호협조적인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레임덕 자초한 ‘영포 게이트’=이명박정부도 측근 비리를 피해가지 못했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 파문은 이 전 대통령과 동향 출신 고위 공직자 모임인 ‘영포(경북 영일·포항)목우회’의 월권행위로 번졌다. 2007년 대선 당시 이 전 대통령의 외곽조직이었던 선진국민연대 출신 인사들이 금융계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줄줄이 터져 나왔다. 친이 내부의 권력투쟁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정권 출범 공신과 측근들이 사사건건 충돌하면서 국민 불신은 커졌고, 국정을 운영할 동력은 떨어졌다.

지난해 말 정윤회 동향 문건에서 촉발된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사건을 보면서 이때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정권 내부 인사들끼리의 알력다툼이면서 인사 문제가 화를 자초했다는 점에서 닮았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이 집권 초반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측근과 친인척 관리에 단호함을 보였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는데, 이는 박 대통령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이 전 대통령의 대북정책 기조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린다. 연평도 포격 등 북한의 잇따른 대남 도발에 단호히 대응했다는 지적과 함께 남북 신뢰와 교류협력을 크게 후퇴시켰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박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단절과 갈등의 분단 70년을 마감하고 통일의 길을 열어가겠다고 밝혔다. 남북 간 대화·협력 분위기를 잘 살려 중대한 변화를 이끌어내느냐에 따라 집권 3년차 평가가 엇갈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