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소송은 신해철씨 유족 처럼…

입력 2015-01-05 00:08

‘계란으로 바위치기’는 의료소송을 준비 중인 의료사고 피해자들이 가장 많이 듣는 얘기다. 의료소송이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고액의 소송비용과 수년간의 소송으로 몸과 마음은 피폐해지고 의료과실을 입증 못해 패소하면 수천만 원의 상대방 소송비용까지 부담하는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는다.

2012년 4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설립돼 소액의 비용으로 최장 120일 이내에 의료인 2명, 현직 검사, 의료전문변호사, 소비자권익위원 총 5인의 객관적인 전문 감정을 통해 조정을 해주는 의료분쟁조정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상대방인 병원이 거부하거나 14일 동안 무응답하면 조정이 자동으로 각하되기 때문에 우리나라 국민의 50% 이상은 이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의료분쟁 조정절차 자동개시제도’를 내용으로 하는 의료분쟁조정법이 국회에 발의되어 있지만 대한의사협회의 반대로 진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중가수로써 독설가로써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마왕 신해철씨가 의료사고로 사망하는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신해철 유족은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나 유족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시청각적으로 보여 주었다. 유족은 우선 장례를 잠시 미루고 부검을 의뢰했고 병원에서 의무기록지를 신속히 확보했고 의료전문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의료사고 피해자는 일반적으로 고액의 수임료를 주고 변호사를 선임하면 변호사가 증거 수집이나 증인 확보를 모두 다 알아서 해 주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변호사는 의료사고 피해자의 진술과 제공된 증거로 준비서면을 쓰고 법정에 출석해 소송을 수행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증거자료 수집과 증인 확보는 전적으로 의료사고 피해자의 몫이다. 그렇다면 의료사고 피해자가 의료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금부터 꼼꼼하게 한번 살펴보자.

첫째, 의료사고가 의심되면 가장 먼저 병원에서 의무기록지 사본을 발급받아야 합니다. 병원에서 의료사고를 은폐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의무기록지를 위조하거나 변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속한 의무기록지 사본 확보가 의료소송의 승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째,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사건경위를 날짜, 시간 순서에 따라 가급적 자세하게 기록해야 한다. 환자 자신이나 환자가족이 작성한 사건경위서를 병원에서 작성한 의무기록지와의 대조를 통해 의무기록지의 위변조 여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의료사고 장소에 CCTV가 설치되어 있다면 법원에 CCTV 테이프의 증거보전 신청을 해야 한다. 병원에게 불리한 내용이 촬영되어 있으면 삭제나 변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환자가 의료사고로 사망하면 부검을 실시해야 한다. 전통적 유교문화와 사람을 두 번 죽인다는 인식 때문에 유족들이 선뜻 ‘부검’에 동의하지 못한다. 그러나 부검만큼 의료진의 과실여부를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의료사고 사망 시에는 부검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다섯째,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의사, 간호사, 목격자 등 의료사고의 정확한 경위를 알고 있는 사람들의 증언을 최대한 빨리 녹취나 사실확인서 등으로 확보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나지 않을 수 있고 병원에서 미리 의사, 간호사 등과 병원에 유리하도록 말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신해철씨 의료소송의 결과가 어떠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해당 병원에서는 의사 출신 의료전문변호사를 선임했고 앞으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재판에서 승소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신해철씨 유족도 신속히 의무기록을 확보했고, 사건경위도 자세히 정리했고, 부검도 실시해 유리한 증거도 확보했고 의료전문변호사까지 선임했다. 이제 재판에서의 진검승부만 남았다. 신해철씨 유족이 꼭 승소하길 바란다. 그래서 의료사고 피해자도 준비만 잘 하면 의료소송에서 승소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이것이 신해철씨가 이 땅의 의료사고 피해자들에게 남긴 “또 하나의 선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