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가루의 유혹 완전 떨쳐내려면 공동대응 모임 적극 참여하라

입력 2015-01-05 00:07
약물 의존에서 벗어난 회복자들은 주기적으로 모여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약물 중독에서 회복되도록 돕는다.

김지호(가명)씨가 약물중독에 빠진 것은 대학교 1학년 때부터다. 그는 유학시절 어울리던 친구들로부터 마약류로 지정된 향정신성의약품인 ‘러미라’를 접하게 됐고, 이후 이 약이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게 됐다. 중독은 중독을 불렀다. 약 중독으로 잠이 오지 않을 때면 하루 500알의 수면제를 복용하다 병원에 실려 간 경험도 있다. 김씨는 “약물 중독에서 벗어나는 데 10여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며 “단약은 절대 혼자서 할 수 없으며 함께 싸워 이겨내야 한다”고 말했다.

약물 중독으로 고통을 받는 이들은 고스란히 이러한 고통을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여긴다. 스스로 중독을 이겨내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중독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정부가 4대 중독(알코올·도박·약물·인터넷게임) 근절을 선포했지만, 이 중 약물중독자들에게는 보다 실질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약물중독은 단순히 중독이라는 범주를 넘어 의학적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더불어 중독자가 스스로 약물중독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회복을 위한 공동체를 통해 함께 이겨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중독은 중독을 부른다, 정신적·신체적 파멸 이끄는 ‘약물중독’=그렇다면 약물중독의 기전은 어떻게 될까. 마약은 뇌에서 ‘도파민’을 폭발적으로 만들어낸다. 뇌에서 도파민이 나오면 기분이 좋아진다. 마약을 하면 평소 나오던 도파민을 한꺼번에 나오게 한다. 조성남(사진) 강남을지병원장은 “일반인의 뇌에서 도파민이 20∼30개가 나오면 기분이 좋아지는데 반해, 마약을 하면 500개의 도파민이 한번에 폭발적으로 나와 기분을 좋게 한다”며 “약물에 빠져들면서 도파민 수치가 계속 올라가다 더 이상 뇌에서 도파민을 만들어내지 못하면서 중독자들의 정신과 육체는 파괴가 된다”고 설명했다. 뇌에서 도파민이 일정 수치 이상으로 나오지 않으면, 중독자들은 무기력해진다. 그렇다보니 계속해서 들뜬 기분을 유지하기 위해 약물을 반복해서 하게 된다. 이는 결국 뇌손상으로 이어진다.

중독은 당뇨병처럼 만성적인 뇌의 질환이다. 조 원장은 “한 번 약물을 통해 느꼈던 경험은 뇌의 기억장치 속에 저장돼 없어지지 않는다”며 “재발되지 않도록 평생 관리해야 하는 질환”이라고 말했다.

◇중독은 함께 극복해야 할 공통의 문제=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약물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치료의 첫 번째는 약에 대한 해독치료이며, 올바른 가치관과 인생관을 정립하게 하는 동기강화요법이 두 번째 치료다. 이들에게 단순히 약을 끊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왜 약을 끊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문제는 약물중독자들이 스스로 노력한들 중독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약물중독자들이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동체를 만들었더니 매우 효과적이었다는 점이다. 기자는 최근 한 모임에 참석했다. 약물의존자들의 회복 모임인 ‘NA(Narcotics Anonymous)’다. 이곳에서는 약물 의존에서 벗어난 이들이 서로의 사연을 공유하고 나누며 함께 약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을 돕는다. 이 모임에 참여하는 이재석(가명)씨는 “20여년간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절대 내 힘으로만 극복하기 어렵다. 공통의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어려움을 나눌 때에야 비로소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조성남 병원장은 “중독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공통의 문제다. 정부는 중독자들을 단속만 할 것이 아니라 이들을 위한 실제적인 회복 공동체, 치료 정책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중독은 충분히 회복 가능한 질환이며 함께 노력해서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신종 마약뿐만 아니라 수면제나 진통제, 감기약 등과 같은 처방 약물의 남용에 따른 중독자들은 10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집계되지 않은 수치까지 합치면 2배수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마약류 외에 이러한 처방 약물에 의한 중독에 대해 집계조차 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장윤형 기자 vitamin@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