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점. 불합격입니다.”
대기업 사내변호사인 김수철(가명·31)씨는 지난 2일 이성과의 만남을 주선해주는 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의 신입회원 가입 심사에서 탈락했다. 키 180㎝에 명문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까지 패스한 터라 남부러울 것 없다고 여겼는데 외모에 발목이 잡혔다.
회원이 5만명이나 되는 이 앱은 회원가입 신청자의 사진 3장과 프로필을 기존 이성 회원들이 심사해 가부를 결정한다. 주로 사진 심사에서 당락이 갈린다. 기존 여성 회원들은 김씨에게 5점 만점에 1.73점(합격선은 3점)을 줬다. 김씨는 4일 “피부 레이저 시술이라도 받아야 하나”라며 씁쓸해했다.
이렇게 스마트폰 앱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조건’을 내걸고 그 관문을 통과해야 이성과의 만남이 이뤄지는 ‘소셜데이팅’이 확산되고 있다. 출생지·학력 등을 걸러내더니 외모까지 사전에 평가하는 앱이 등장했다. ‘효율’을 앞세워 인간관계에서 우연과 감정을 배제하는 세태가 자리 잡아 가고 있는 것이다. 학벌·외모 지상주의,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소셜데이팅이라 불리는 이런 앱은 벌써 170여종이 등장했다. 외모·학벌·생활방식 등 요구하는 조건도 각기 다르다. 성격·이상형·외모 등을 바탕으로 회원들에게 매일 2명씩 이성을 소개해주는 한 소셜데이팅 앱은 출시 3년 만에 누적 회원 100만명을 돌파했다. 월 5억원대 매출을 올리며 88쌍의 결혼을 성사시켰다.
이 앱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다른 앱은 학벌·외모·재산·성품·집안 등 5가지 항목 중 이용자가 가장 내세울 수 있는 것을 중심으로 프로필을 쓰게 한다. 기존 이용자의 추천을 받고 운영진의 심사를 거쳐야 가입할 수 있다. 가입이 승인돼도 매월 10여만원의 회비를 내야 하는데, “물이 좋다”는 입소문이 나서 인기가 높다.
해외에서도 소셜데이팅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중국의 소셜데이팅 앱 사용자는 1억4000만명에 이른다. 미국도 관련 업체가 7500개에 달하고 4000만명 이상 이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시장 규모는 지난해 200억원을 돌파했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는 최대 500억원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용자들은 소셜데이팅의 장점으로 효율성을 꼽는다. 연애를 시작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본다. 외모를 심사하는 소셜데이팅 앱에 아슬아슬하게 합격했다는 직장인 임모(31)씨는 “친구들에게 소개팅을 부탁할 필요도 없고, 조건을 따지며 주선자 눈치를 보지 않아도 돼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만남이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해 11월 울산지법은 소셜데이팅 앱으로 만난 10대 청소년을 성폭행한 20대 남성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지난 10월에는 대구에서 소셜데이팅 앱을 통해 10여 차례 성매매를 한 김모(22·여)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일단 만나고 보자’는 생각에 신상정보를 속이는 경우도 많다. 이모(27·여)씨는 “직업이나 학교 등을 속인 뒤 성관계를 유도하는 남성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자기소개 코너에 워낙 많은 신상정보가 담기다 보니 개인정보 유출 위험도 있다.
소셜데이팅 앱에 가입했다가 탈퇴한 황모(22·여)씨는 “결국 외모나 학벌에 따른 차별을 정당화, 공식화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임지훈 기자 zeitgeist@kmib.co.kr
[기획] 젊음이 열광하는 소셜데이팅, 괜찮나
입력 2015-01-05 0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