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사랑하는 사람들] ⑦ ‘십자가 화가’ 최영이 권사

입력 2015-01-05 00:59
지난달 18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14 유니세프와 함께하는 부산국제아트페어’에서 만난 ‘십자가 화가’ 최영이씨. 최씨는 화폭을 격자무늬로 나눠 비슷한 색상을 십(十)자 모양으로 배치한 작품 ‘숨은 십자가’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부산=허란 인턴기자
그가 이날 전시회에 출품한 십자가 작품들. 부산=허란 인턴기자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2014 유니세프와 함께하는 부산국제아트페어’를 찾은 건 행사 개막일인 지난달 18일이었다. 행사장엔 국내외 작가 200여명이 출품한 작품 2000여점이 전시돼 있었다. 저마다 화풍이 인상적인 그림들이어서 관객들 눈을 사로잡기엔 충분했다. 그런데 이날 행사장 한 부스에는 여타 그림과는 소재부터 판이하게 다른 그림 10여점이 걸려 있었다. 화폭에 십자가의 형상을 담은 성화(聖畵)들이었다. 작품을 그린 사람은 부산 수영로교회 권사인 화가 최영이(66·여)씨. 최씨는 20년간 십자가 그림에만 매진한 ‘십자가 화가’였다.

“그동안 그룹전이나 아트페어에 많이 참가했는데 기독교 작품을 내놓는 화가는 전시회 때마다 제가 유일하더군요. 십자가 그림으로 복음을 전하는 게 제 삶의 목표입니다.”

십자가 화가로 외길 20년

최씨는 어린 시절부터 화가가 꿈이었다. 경제적 형편 때문에 미술에 관심이 많아도 화가의 꿈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던 시절이었지만 최씨의 경우는 달랐다. 그의 아버지는 경남 사천에서 건어물 ‘화어(花魚)’를 만드는 회사를 운영했는데, 사천 일대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최씨는 영남대 미대에 진학해 그림을 배웠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한 뒤엔 화가의 꿈을 잠시 접어야 했다. 사천에 내려와 회사 일을 도우라는 아버지의 간곡한 요청 때문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최씨는 교회도 거의 나가지 않았다. 그가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한 건 스물여덟 살이던 1977년 3월부터다. 당시 최씨는 부산에 살던 언니 집에 놀러갔다가 기도집회 개최를 알리는 현수막을 보았다. 미국 지미 카터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주장에 반기를 든 기독교인들의 집회였다.

“교회에 몇 번 나가긴 했지만 신앙도 없었고, 주한미군 문제에도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 집회엔 꼭 참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혼자서 집회가 열린 구덕체육관 앞 광장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이 집회에서 최씨는 성령을 체험했다. 참가자들 사이에 섞여 통성으로 기도를 하다가 주님의 음성을 들은 것이다. ‘영이야, 너는 그림을 전공하지 않았느냐. 그림으로 나를 증거 해야 한다.’

예수님의 목소리를 들은 최씨는 통곡하고 말았다. 사천으로 돌아온 그는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다. 예수님의 종으로 거듭난 것이다. 새벽기도회를 포함해 교회 행사엔 무조건 참가했다. 하지만 아버지 사업을 돕느라 작품 활동은 할 수 없었다. 일에만 전념한 탓에 결혼할 시기도 놓쳤다.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뜬 85년엔 부산으로 거처를 옮겨 미술학원을 운영했다. 하지만 여전히 작품 활동은 하지 않았다. 최씨가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건 94년부터다.

“수영로교회에서 새벽기도를 하는데 십자가의 환상이 보이더군요. 백합 위에 십자가가 포개진 이미지였습니다. 환상을 보니 그림으로 나를 증거 하라고 하신 주님의 명령이 뒤늦게 떠올랐습니다. 그때부터 십자가 그림에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그린 십자가 작품이 100점이 넘을 겁니다. 십자가 그림을 그리다 보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경건한 것인지 묵상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재림도 생각하게 되고요.”



“십자가는 예수님의 사랑”

최씨가 지금까지 개최한 개인전은 25회에 달한다.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 중국 일본 등지에서도 개인전을 열었다. 동료 작가들과 함께 한 그룹전 등을 합하면 200회가 넘는 전시회를 가졌다. 특이한 건 십자가 작품을 전시만 할 뿐 어느 누구에도 팔지 않는다는 점이다.

“십자가 그림을 팔면 가룟 유다처럼 예수님을 파는 기분이 들 것 같더군요. 주변 사람들도 십자가 그림을 돈 받고 팔아선 안 된다고 하고요(웃음). 다행히 아버지가 남긴 유산 덕분에 그림을 팔지 않아도 생계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언젠가 십자가 그림을 모은 갤러리를 여는 게 꿈입니다.”

최씨의 십자가 사랑은 작품 활동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는 지금까지 십자가 그림을 넣은 명함 크기의 전도지를 25만장 넘게 제작·배포했다. 전시회를 할 때면 자신의 프로필과 십자가 사진이 담긴 엽서를 1000∼2000장 만들어 관객들에게 나눠준다. 그는 "다른 화가들은 그림을 팔기 위해 전시회를 열지만 나는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전시회를 갖는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어 "십자가는 내게 예수님의 사랑"이라며 "20대 때부터 십자가 그림을 그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후회를 많이 한다. 하나님이 앞으로 어떤 역사를 준비하고 계실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세상 사람들이 저의 그림을 통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앞으로는 십자가 그림을 통한 미술선교에 더 집중할 생각입니다. 북한을 비롯한 세계 열방에 나가 십자가 그림 전시회를 열어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보다 행복한 일은 세상에 없으니까요."

부산=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