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감리교 세례자
1887년 7월 24일 한국인으로서 최초의 감리교인이 탄생하였다. 아펜젤러는 자신의 집에서 배재학당 학생인 박중상에게 세례식을 집례했다. 아펜젤러의 일기에 의하면 박중상은 일본에 유학을 갔다 기독교를 처음 듣고 한국에 돌아와 일본 영사의 직원 하야카와의 권면으로 세례를 받게 되는데 하야카와는 아펜젤러에게 신앙 양육을 받고 세례를 받았던 사람이었고 배재학당의 현판의 의미를 해석해 주기도 하였다. 아펜젤러는 세례의 감격을 다음과 같이 남겨두었다.
“여기서 우리 사역이 시작되었다. 나는 그에 대한 모든 것을 주의 손에 맡겼다. 주님만이 그를 보호해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많은 이들이 우리 교회에 몰려올지도 모른다.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이다.”
1887년 10월 2일 주일 밤에는 배재학당 학생인 한용경에게 세례식을 집례하게 된다. 두 번째 세례식에서 아펜젤러는 한국어로 세례식을 거행하였다.
워런 감독의 방문과 예배 처소 마련
미국의 워런 감독은 한국에서 1887년 9월에 세 번째로 열리는 감리교 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문하였다. 워런 감독은 아펜젤러의 사역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그의 사역을 전적으로 후원하기로 하였다.
그는 아펜젤러에게 “한국 정부가 선교에 대하여 묵인한 것 같지만 절대 과소평가하지 말게. 내가 한국 선교를 위하여 힘써 밀 것이며 선교 후원을 하겠네”라고 말했다.
아펜젤러는 워런 감독의 도움으로 네 가지 정도의 선교 사역을 추진할 수 있었다. 첫째는 한국인만을 위한 예배 처소를 위해 가옥을 마련하였고, 둘째는 권서인(勸書人)을 내지로 파송하는 것과 그 사역을 후원하는 것, 셋째는 이북 지역인 평양에서 선교 사역을 하는 것, 넷째는 한국 선교를 위해 두 명의 선교사를 추천, 보강하는 것으로 한국 선교를 지원했던 일이다.
한국 최초의 감리교회, 베델 예배당의 설립
워런 감독의 방문과 후원에 힘입어 아펜젤러는 한국인을 위한 성경공부와 예배 처소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9월 말에는 예배 처소의 하나로 아담한 가옥을 매입하였다. 이곳이 아펜젤러의 선교 사역의 결실이 되는 정동교회의 모태, 곧 베델 예배당이다. 베델 예배당의 교인 구성을 살펴보면 교파와 교단, 신분을 초월하는 특징이 드러난다.
1887년 10월 11일 아펜젤러의 일기를 보면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남기고 있다. “10월 9일 베델 예배당에서 오후 예배를 드렸다. 이곳은 우리가 성경공부를 위해 매입한 가옥으로 지난주에는 만주 목단(현재 중국의 선양)의 존 로스 선교사가 이곳을 방문하였고 2명의 한국인 신자를 데리고 왔다. 그중 한 명은 현재 배재학당에 다니고 다른 한 명은 로스 선교사가 한국인 중에서 제일 우수한 인재라고 추천하여 두 번째 권서인으로 채용하였다.”
아펜젤러가 가지고 있던 복음의 열정은 국가와 종파를 뛰어넘어 존 로스와 연합하는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미국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는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와 스코틀랜드 출신의 장로교 선교사 존 로스는 선교지를 두고 자존심을 내세웠던 것이 아니라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존 로스는 당시 아펜젤러의 선교 사역을 보면서 약 15년 전 추운 만주에서 닫혀 있던 한국에 선교가 시작되기를 바라는 기도를 회상했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인 권서들과 밤낮을 세워가며 성경을 번역하였던 노력들이 여기서 결실을 맺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존 로스가 아펜젤러에게 소개해 주었던 ‘제일 우수한 한국인’은 이러한 기대를 표현한 하나의 상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델 예배당의 교인과 예배
한국 최초의 감리교회는 1872년에 만주 지역에 파송된 스코틀랜드 선교사 존 로스와 매킨타이어, 한국인 권서의 기도와 성경 번역 등 말로 다 할 수 없는 피나는 노력들이 아펜젤러의 선교 열정과 연합하여 결실을 맺게 된다.
베델 예배당의 교인은 존 로스가 데리고 왔던 2명의 권서인을 비롯해 강씨, 최씨와 그의 아내로 5명의 한국과 일본 기독교인 남성 2명이 들어와 7명으로 구성되었다. 베델 예배당은 한옥으로 사방 8자가 되는 방의 크기였다.
아펜젤러를 비롯한 모든 교인들은 좌식(坐式)으로 예배를 드렸다. 예배 형식은 아펜젤러가 영어로 기도를 시작하면 성도들은 마가복음 1장부터 차례대로 강독하였다. 마가복음은 만주에서 이미 한글로 번역된 쪽복음서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 다음 권서인 중 한 명이 기도를 인도하였다.
아펜젤러는 “나는 이 예배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중심지가 되도록 기도했다. 현재 서울에는 교인 수가 예배 교인을 포함하여 모두 7명이다. 이곳의 모임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이 여러 명 있다”고 기록했다. 교인 수는 적었지만 모임에는 생기가 넘쳤다.
소요한(명지대 객원교수·교목)
[한국 근대교육 선구자, 아펜젤러] (8) 정동교회의 모태 베델 예배당
입력 2015-01-06 0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