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역사·백남준… 전시장 달군다

입력 2015-01-05 03:48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 ‘W3’. 1994년 작. 64대의 모니터를 이용해 ‘정보 고속도로’를 표현했다. 학고재 갤러리 제공
리움의 세밀가귀전에 나올 ‘청동은입사보상당초봉황무늬 합’. 오른쪽은 백남준을 잇는 비디오아티스트 박현기의 ‘TV시소’. 리움·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월북작가 이쾌대의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 1948∼49년. 한복과 팔레트를 통해 한국인이자 화가로서의 자의식을 투영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비무장지대(DMZ), 서울과 평양의 건축, 월북작가 이쾌대의 회고전….

전시장 안에 분단의 역사가 대거 들어온다. 올해가 광복 70년이자, 분단 7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인 듯하다. 예술적 상상력이 정치적 갈등 해소에 어떤 식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다. 세계적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과 그의 영향을 받은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전도 몰려 있다. 페미니즘, 전통의 재해석 등 낡은 주제도 새 옷을 입었다.

◇분단을 넘어 공존으로=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은 ‘분단 70년 주제전-북한 프로젝트’(7월 21∼9월 27일)를 갖는다. 남과 북의 이념적·정치적 대립을 넘어 공존과 평화의 공감대를 넓히고자 여는 전시다. 아트선재센터는 DMZ접경지역을 예술가적 시선으로 재해석한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 2015’(8월 29∼10월 4일)를 마련했다. 이 곳에선 이 전시에 앞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이데올로기에 의해 단절된 역사를 지닌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지역의 현재를 ‘조화’의 개념으로 살펴보는 국제교류전 ‘불협화음의 하모니’(2월 7∼3월 29일)도 열린다.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한국관의 ‘한반도 오감도’ 전시를 아르코미술관(3∼5월)에서 만날 수 있다. 평양과 서울이 분단 상황 속에서 각각 사회주의 이상과 경제 논리의 지배를 받는 ‘전승 기념비 같은 도시’로 성장해왔다고 웅변한다.

국제갤러리는 북한에 자수작품을 주문 제작하는 프로젝트를 벌여온 함경아의 개인전(3∼5월)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은 월북작가 이쾌대 대규모 회고전(7∼10월)을 갖는다.

◇백남준과 그의 사람들=비디오아티스트 창시자 백남준 회고전 ‘W3’이 학고재 갤러리(1.21∼3.15)에서 열린다. 전시 제목이기도 한 ‘W3’는 인터넷망인 world wide web을 의미한다. 백남준은 1994년에 이미 인터넷을 예상하고 ‘일렉트로닉 슈퍼 하이웨이(Electronic Super Highway)’의 개념을 총 64대의 모니터를 이용해 형상화했다. 국제갤러리에서는 백남준의 제자인 미국의 비디오아티스트 빌 비올라의 개인전(3∼4월)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는 백남준을 잇는 한국의 비디오 아티스트 ‘박현기’전(1월 27∼5월 25일)이 준비됐다. ‘현대미술의 영상시인’으로 불리는 빌 비올라는 느림의 미학을 보여주고 박현기의 작품에서는 동양적이면서 종교적인 색채가 느껴진다.

◇다시 보는 페미니즘과 전통=유기견 목각 인형을 통해 여성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으로 유명한 대표적 페미니스트 작가 윤석남 개인전(4월 21∼6월 28일)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같은 장소에서 동아시아 페미니즘 미술의 현재를 조명하는 ‘판타지아 아시아 페미니즈전’(9월 15∼11월 15일)이 이어진다.

여성 작가들의 활동도 두드러진다. 국내외를 오가며 활동하는 ‘노마드 작가’ 양혜규 개인전(2∼5월)이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린다. 외할머니가 살았던 폐가를 이용한 설치로 주목받으며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작가로 선정된 그 작가다. 대구미술관에서는 깨진 도자기를 이용해 설치를 하는 이수경 개인전(2∼5월)이 관객을 기다린다. 영국의 YBA멤버(1980년대 부상한 젊은 작가들)로 자신의 성적 체험까지 작품으로 올려 ‘무례한 고백적 작업의 작가’로 불리는 트레이시 에민의 개인전(10∼12월)도 국제갤러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전통을 새롭게 보는 시도도 눈에 띈다. 리움의 ‘한국전통건축예찬’(11월∼)은 사진과 영상, 도면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을 부각시킨다. ‘세밀가귀(細密可貴) 한국미술의 품격’전(7∼9월)은 한국 고미술의 정수 가운데 세밀함이라는 키워드에 속하는 작품을 뽑았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서세옥’ 전시(12월∼)에서는 한국화를 현대화하려는 노력을 읽을 수 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