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 입구가 여러 개의 문이 달린 가벽으로 막혀 있다. 출입문 선택은 내 소득 수준에 달려 있다. 그중 한 문을 열고 들어서니 사방의 벽과 바닥이 그래프와 수치로 꽉 채워져 있다. 부모의 자산과 내 수입이 만나는 좌표가 표시된 바닥에는 집을 사기 위해 얼마나 빚을 져야 하는지가 표시돼 있다. 마치 신문의 경제면 특집기사를 확대 복사해 전시장에 옮겨온 것 같은 개념미술 작품이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즐거운 나의 집’은 집의 역설을 전시장에 담았다. 작가 10인과 건축가 그룹, 디자이너 그룹, 만화가, 영화감독 등이 참여했다.
전시는 ‘과거의 집’ ‘현재 사는 집’ ‘살아보고 싶은 집’ 등 3개의 카테고리로 꾸며져 있다. 현재 사는 집은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 위한 현실이 얼마나 치열하고 각박한지를 야유하는 듯한 작품으로 채워져 있다. 계단 위에는 비디오영상이 담긴 여행용 슈트케이스가 놓여 있다. 여행 가방의 크기는 내 삶의 크기를 결정하는데, 이를 통해 집의 크기가 소유할 수 있는 양을 결정하는 현실을 비꼰다. 주택과 관련해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입에 오르는 단어는 뭘까. ‘선착순’ ‘평생’ ‘마지막’ ‘기회’를 타이포그라피로 표현한 작품도 있다. 비디오, 설치, 회화 등 구분 없이 하나 같이 집을 둘러싼 사회적 이해관계를 낯설게 돌아보게 한다.
과거 기억 속의 집은 따뜻하면서도 감각적이다.
현관 거실 부엌 화장실 다락방 마당 등 집을 이루는 공간들이 갖는 온기에 대한 기억을 환기시킨다. ‘안네의 일기’ 속 안네에게 다락방은 나치의 박해를 받던 유태인 소녀의 감당할 수 없었던 공포감과 슬픔을 기억해주는 공간으로 재현되어 있다. 화장실의 좌식 변기는 나만의 독서와 휴식의 공간으로 재탄생해 익살스럽다. 어머니가 빨래 너는 마당 등 시골의 따뜻한 에피소드를 떠올리게 하는 드로잉 작품도 눈길을 끈다.
마지막 ‘살고 싶은 집’ 코너에는 대안적인 주거형태들을 디자인, 영상, 서적 등 도큐먼트로 선보인다. 의뢰인이 꿈꾸었으나 건축가가 여러 이유로 실현하지 못한 집들에 대한 이야기도 당시 설계된 집의 평면도와 함께 전시되고 있다. 대학 공부 때문에 떨어져 살지만 가끔씩 내려오는 아들을 생각해 이런 집을 지었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바람, 주말주택을 짓고 싶은데, 작은 방도 여럿 만들어 필요한 사람과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은퇴한 부부의 바람이 공감을 산다.
삶의 터전이 아니라 자산으로서의 집만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들에게 내 집은 어떠한지, 나의 삶은 어떠한지 돌아보게 한다. 전시는 2월 15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전시장으로 들어온 집… 추억·애환·소망 담아
입력 2015-01-05 0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