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북한 동포들의 마음을 살 수 있어야

입력 2015-01-05 00:00

엄동설한 한반도에 훈풍이 인다. 세밑 통일준비위원회가 1월 중 남북 당국자회담을 열자고 제안하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는 1일 신년사에서 정상회담을 포함한 남북대화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어 2일 통일부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당국 간 대화를 희망한다고 화답했다.

새해 들어 남북관계는 작년과 사뭇 다르다. 지난해 박근혜정부는 통일대박론을 내세우고 드레스덴 선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구축 등 남북 간 대화·협력을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했지만 진전은 없었다. 아시안게임 폐회식에 북한의 권력서열 2∼4위가 전격 참석해 대화의 물꼬를 트는가도 싶었지만 한낱 퍼포먼스로 끝났다. 그만큼 이 훈풍 분위기는 귀하고 소중하다.

변화의 계기는 북한 지도부를 둘러싼 안팎의 사정일 것이다. 최고지도자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한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이 통과됐고, 북한의 소니 픽처스 해킹과 관련해 미국의 대북 제재 수위는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제 사정은 악화되고 있지만 전통우방 중국과의 관계는 원만치 않으며 그 대안으로 떠오른 러시아도 국제유가 하락으로 국가부도 직전인 탓에 경제지원을 얻기도 쉽지 않다. 북·일 교섭도 교착상태가 늘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한국은 상황인식에서 신중해야 한다. 지금의 훈풍은 어디까지나 북한의 출구전략으로서 남북관계 개선이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출구전략은 보통 일시적인 것이기에 본질적이고 지속가능한 남북관계 구축에 대북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남북관계를 전략적 유연성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다.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에 만연돼 있는 통일과 관련한 몇 가지 착각들부터 점검해야 한다. 통일대박론은 통일의 필요성을 대중에게 호소하고 통일의 긍정적 측면을 강조한 점은 평가할 수 있지만 통일의 문제를 지나치게 가볍고 손쉽게 인식하게 하는 맹점이 적지 않다.

예컨대 내부적인 변동에 의해 북한 지도부가 자체붕괴 상황에 직면했을 때 남한의 군대나 행정력이 자연스럽게 북한을 접수할 수 있을 것인가. 무엇보다 그 경우 북한 동포들은 남한을 환영하며 믿고 의지할 것인가. 그런 사태에 직면했을 때 중국은 가만히 보고만 있을 것인가. 이 세 가지 단순한 질문 중 그 어느 하나도 현 단계에서 확실하게 “예”라고 대답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막연하게 낙관론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지금까지와 다른 위기사태가 북한에서 벌어졌을 때 과연 북한 동포들은 남한 정부를 신뢰할 것인가. 바로 그 질문에 대북전략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본다.

그간 남한 정부와 국민들은 북한 동포들의 환심을 살 수 있는 행보를 취했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일시적으로 식량 의약품 등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있었지만 꾸준하지는 못했다. 다양한 이유와 장애 속에서 지원이 끊기고 잊혀지면서 되레 마음을 상하게 했는지 모른다. 그들의 마음을 사지도 못한 채 통일대박 운운만 해서는 남북관계 개선은 지속되기 어렵다.

대북 인도적 지원은 남북관계가 조금 꼬였다고 해서, 이런저런 상황에 따라 중단하거나 매도해서는 안 된다. 꾸준한 인도적 지원만이 북한 동포들의 마음을 열 수 있고 한국에 대한 신뢰감을 뿌리내리게 할 수 있다.

여러 루트로 한국의 드라마나 물품들이 유입되고 있다지만 그렇게 경험하는 남한은 부러움의 대상일 수 있겠지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상대로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체제는 달리 하더라도 한반도 남쪽에는 같은 민족이 살고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들의 어려움조차도 충분히 감싸줄 것이라는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분단 70년을 맞는 새해 벽두에 부는 훈풍이 결실을 맺으려면 조급증을 버리고 북한 동포들의 마음을 사는 일에 대북전략의 초점을 두고 매진해야 하겠다.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경제협력의 확대는 내수 정체에 빠진 한국경제에 돌파구가 될 수도 있겠고.

조용래 편집인 jubilee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