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어목 개복치과에 속하는 어류인 개복치는 요즘 돌연사의 아이콘이다. 이 어류는 한동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돌아다녔다. 개복치는 아주 예민해서 작은 상처나 수질 변화에도 스트레스를 받아 죽어버린다고 한다. 다소 과장됐겠지만 아침 햇살이 강렬해서, 공기방울이 눈에 들어가서, 옆에 있던 친구가 죽은 것에 충격을 받아서 스트레스로 사망한다는 식이다. 몸길이가 평균 4m에 달하고 최대 무게는 2000㎏까지 나간다는데 겉모습과 달리 마음은 유리알인 것이다.
우리 집엔 개복치 둘이 산다. 남편과 나는 쉽게 말하면 스트레스 취약계층이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갑을 논리에 빗대자면 우리는 정신적 을인 셈이다. 쉽게 상처받는 성격이어서 조심성 없이 말하는 사람을 극도로 싫어한다. 근심거리가 있으면 다른 일을 손에 잡지 못한다. 하루 종일 스트레스성 복통이나 두통을 호소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다행히 서로 도움이 필요한 순간을 잘 알아채고, 외부의 자극이 있을 때 비슷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우리 집 개복치들의 조합은 꽤 괜찮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맷집이 부실해 작은 상처에도 돌연사하는 개복치들로 가득 찬 세상은 끔찍하다. 세상이 그렇게 될 리는 없다고? 돌파구가 없을 땐 아무리 강철 같던 사람이라도 개복치처럼 나약해진다. 스트레스 연구 분야의 권위자인 미국 록펠러 대학 브루스 매쿠엔 교수는 ‘스트레스의 종말’이라는 책에서 스트레스에 지속적으로 과다 노출될 경우 나중에는 스트레스 상황이 끝난 뒤에도 체내 시스템이 ‘상황종료’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널리 알고 있다시피 이 상태가 반복되면 어떤 형태로든 병으로 드러난다. 현대사회에서 스트레스 반응을 촉발시키는 사건들은 더 이상 도전이나 도망으로 해결될 수 있는 종류의 것도 아니란다.
그래도 자신이 병에 걸릴 것 같다고 걱정하거나 이미 병에 걸린 줄 알면 다행이다. 주변을 보면 중독증, 강박증, 우울증에 빠진 사람이 허다하다. 나도 어떤 부분에선 예외는 아닐 거다. 하지만 많이들 이것을 정신병이라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구제받을 노력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알을 낳기 위해 거친 물살을 헤치고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연어의 강인함을 칭송한다. 그런데 매쿠엔 교수에 따르면 우울증에 좋다는 연어도 스트레스로 죽는단다. 정작 연어에겐 그 모든 과정이 스트레스라는 것이다. “사람 사는 것 다 똑같다. 다들 견딘다. 우는 소리 말고 참아라.” 그건 위험천만한 말이다.
뜯어보면 우리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잘 모른다. 오죽하면 ‘멍 때리기대회’가 열릴까. 가끔 휴가지에서 외국인들을 보면 서글픈 생각이 든다. 휴가가 긴 그들은 해변에서 조깅도 열심히 하고, 책도 보고, 가만히 햇볕을 쬐며 누워있기도 한다. 한국 사람은 어디 한 군데 더 챙겨보느라 발이 부르튼다. 일상에서 탈출을 하긴 했는데 충전의 시간인지 방전의 시간인지 가끔 헷갈린다. 휴가 얘기까지 할 필요도 없다. 가족과 이야기 나눌 저녁시간만이라도 허락되면 감사한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수많은 청춘들은 마음의 병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을까. 스펙이 늘어도 취업이 안 되면 스펙이 늘어날수록 자괴감도 늘어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입시지옥이라 해도 학창시절은 추억이 되는데, 자존감이 땅콩만해지는 백수생활은 추억이 안 된다. 사회 곳곳에서 사람들의 마음은 모두 어떻게 돼가고 있는 것일까.
인간은 뭔가가 자신을 위협하는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그것과 싸우거나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는 데 필요한 신체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무서운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대형 참사 이후의 집단적 공포와 우울증, 갑의 횡포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사회에 한 발 내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청춘들의 패배감, 노인들의 고독감과 무기력은 실제 겪지 않아도 나를 힘들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차원의 면밀한 스트레스 관리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부끄러운 명예를 10년째 안고 있다. 우울증을 과소평가하고 마음의 병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는 우리 문화 탓이다. 정신건강 관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이야기할 때가 아직 안 됐다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개복치의 캐릭터를 희화화해 만든 ‘살아남아라 개복치’라는 모바일 게임이 인기라고 한다. 그런데 게임 내용이 예상을 뒤엎는다. 개복치를 잘 키우면 되는 것이 아니다. 20가지에 달하는 돌연사 케이스를 모으면서 점수를 얻는 것이다. 비정하기가 꼭 요즘 세상 같다. 불쌍한 개복치들을 위해 학교가, 기업이, 국가가 더 나서주기를 바라는 건 무리한 바람일까. 양은 평화와 온순함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치유하는 해가 됐으면 한다.
임세정 국제부 기자 fish813@kmib.co.kr
[창-임세정] 우리집에 개복치가 산다
입력 2015-01-03 0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