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정상회담 逆제안] 4년차 맞은 김정은, 자신감 속 불안감도 작용

입력 2015-01-02 03:24 수정 2015-01-02 15:24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1일 ‘남북 정상회담 개최 용의’까지 포함한 ‘통 큰’ 남북관계 개선책을 내민 배경에는 ‘자신감’과 ‘불안감’이라는 서로 반대되는 힘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제1비서를 중심으로 한 유일영도체제가 어느 정도 안정화 궤도에 올랐다는 판단이 회담의 급을 격상시킨 적극성으로 표출된 반면 경제 부흥과 국제적인 인권 압박에 대한 다급함이 ‘선(先) 제안’을 낳았다는 분석이다.

◇집권 4년차, ‘김정은 시대’ 출범의 자신감 반영=김 제1비서는 지난해 12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3주기’를 기점으로 삼년상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곧이어 신년사에서 ‘남북 정상회담’ 용의 의사를 거론했다. 자신의 시대가 시작되자마자 초(超)강수부터 꺼내든 셈이다.

남한에 손을 내민 자신감의 원천에는 정치 체제의 안정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제1비서는 신년사에서 지난해를 ‘정치적 성공 시기’로 자평했다. 노동당에 대한 민심에는 “인민들의 신뢰가 두터워지고 우리의 일심단결이 공고화됐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배경에는 집권 이후 3년간 숙청과 발탁을 반복하며 권력 재편에 성공한 것이 한몫했다. 처형된 장성택과 김 위원장 시절 주역들이 물러난 자리엔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등 김 제1비서가 직접 발탁한 인사들이 채워졌다. 최룡해 당 비서, 여동생 김여정 당 부부장 등 ‘자기 사람’을 권력 전반에 심고 ‘자수성가형+빨치산 2세대+백두 혈통’으로 이어지는 권력의 3각 구도를 완성했다. 정부 관계자는 “2013년과 2014년 대남 구호가 없었으나 올해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자’는 구호를 선제적으로 채택했다”고 평가했다.

◇경제 부흥에 대한 열망 강하게 작용=정치 분야가 빠르게 안정화되고 있는 데 비해 경제 성장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일단 북·중 관계 악화가 악재로 지적된다.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인 상황에서 석탄·철광석 수출 위주의 단순한 북한 무역이 타격을 받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 중국과 관계가 냉각된 상황에서 믿을 곳이 남한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관계개선 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른 러시아의 경우 국내 경제 상황이 악화돼 있다.

김 제1비서 집권 이후 경제가 호전되고 있기 때문에 경제 부흥 필요성은 ‘압박’보다 ‘기회’로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의 경제성장이 플러스로 돌아섰고, 평양과 국경지대 주민들의 의복이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연구위원은 “주민생활 수준이 향상되고 있는데, 이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외자 유치가 절실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김 제1비서는 신년사에서 “원산-금강산 국제 관광지들을 비롯한 경제개발구 개발 사업을 적극 밀고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강산 관광 재개 외에 원산의 명사십리, 마식령 스키장 등 관광자원을 개발하기 위해 남한의 자본과 관광객이 절실하다.

◇남북 대화로 ‘국제 왕따’ 고립감 타개=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처리 및 안전보장이사회 의제화, ‘최고 존엄’ 암살을 소재로 한 영화 ‘인터뷰’ 상영 등으로 촉발된 위기감도 남한에 손을 내민 배경으로 볼 수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내년 5월 초청 건이 있기는 하지만 김 제1비서는 국제사회에서 ‘왕따’나 다름없다. 맹방인 중국과의 정상회담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다. 특히 김 제1비서가 ‘국제형사재판소(ICC) 제소감’으로 간주된 상황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정상국가’로 인정받는 반전 카드가 될 수 있다.

통일연구원은 북한 신년사의 배열을 분석해 “북한의 대내외 위기의식이 반영됐다”고 평가했다. 통상 경제정책을 먼저 제시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이번에 ‘정치사상강국’ ‘국방력 강화’를 먼저 제시한 데에는 북한 당국이 국제사회로부터 느끼는 압박감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압박이 강하기 때문에 그만큼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김 제1비서는 신년사에서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을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이 자위적인 핵 억제력을 파괴하고 공화국을 힘으로 압살하려는 기도가 실현되지 않자 매달린 인권소동”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사회주의 압살이 책동이 계속되는 한 선군정치과 (경제·핵) 병진노선을 변함없이 견지하고 자긍심을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유동근 기자 dk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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