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용어 중에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는 말이 있다. 인지는 생각 혹은 논리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인지 부조화는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인 리언 페스팅어(Leon Festinger)가 사용한 용어인데, 두 가지 모순이 되는 인지를 가질 때 나타나는 불균형 상태를 말하며 심리적인 안정을 찾기 위해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고려하게 된다. 인지 부조화에서 선택을 위해 어떤 요인들이 작용하는지가 더 중요한 부분이지만 여기서는 결과적인 선택에 대해서만 잠시 생각해보려고 한다. 모순되는 인지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원래 있던 인지를 고수하거나, 새로운 인지를 채택하거나, 두 가지의 타협을 찾는 것이다.
지난해 우리는 많은 인지 부조화를 경험했다. 대표적인 인지 부조화는 국가의 안전이 우리를 보호해준다는 옛 인지와 너무나 모순되는 새 인지, 즉 우리를 지켜주지 못하는 국가와 책임자들의 안전 불감이었다. 어떤 이는 여전히 건재하다며 옛 인지를 고수하고 실체를 직시하지 못하며, 어떤 이는 새 인지에 의해 그동안의 안전을 위한 노력을 무시하고 매우 불안정한 상태로만 상황을 이해하려든다. 이러한 경우엔 온고지신이라는 말처럼 둘 사이의 조화로운 영역을 찾아보는 것이 더 바람직하게 여겨진다.
성경에서 대표적인 인지 부조화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눈이 멀어 삼일 동안 식음을 전폐한 채 있었던 그 시기(사도행전 9:1∼9)를 떠올린다. 바울은 유대인이며 철저한 바리새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인지에서 예수와 그를 따르는 무리는 민족에서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를 만나면서 모순된 새로운 인지가 삽입되었다. 그는 앞이 안 보이는 고통만이 아니라 그동안의 신념 체계가 붕괴되는 혼란까지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한 해를 모두 잊고 새출발을 하고 싶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기 힘들 것이다. 아니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채 올해로 넘어온 일들을 회피해선 안 된다. 너무 빨리 인지 부조화를 이른바 ‘해치우려고’ 해서는 안 된다.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걸리는 무수한 갈등과 고뇌와 시행착오를 충분히 거쳐야 결과가 단단하여 보다 안정적인 상태가 되는 것이다. 바울도 삼일 동안 심지어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면서 그 시기를 보내지 않았는가. 우리도 꽤나 긴 시간을 그렇게 보내게 될 것이다. 나에게도 최근 인지 부조화를 제공하는 몇몇 경험이 있었다. 부조화를 짊어지고 있기란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 인지 부조화는 성숙을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길이라는 생각을 하면 위안이 된다.
양희송은 그의 저서 ‘가나안성도, 교회 밖 신앙’에서 이 시대의 교회 이탈 현상을 주목하고 분석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안에서 혼란을 경험하여 교회를 떠나고 있다. “떠나서 분명한 것은 없고 더 큰 혼란을 경험할 뿐이다. 그러니 다시 교회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옛 인지다. 새 인지는 교회의 개혁 혹은 새로운 틀의 교회를 기대한다. 대한민국을 위기라고 부르는 것만큼 교회를 위기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한 시대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책에서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이 고민의 결론을 너무 빨리 내리지 말자는 부분이었다. 그렇다. 인지 부조화를 대충 빨리 넘겨서는 안 된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부조화의 과도기를 거쳐 보다 확실하고 안정적인 선택의 결과를 내야 한다.
새 인지를 채택하여 옛 인지를 완전히 버리거나 두 인지 사이의 절충안을 만들거나 둘 다 고통이 따르기는 마찬가지다. 바울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결정은 이후 있을 무수한 고난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고난 가운데 진정한 안정을 찾았다. 이것이 얼마나 모순적인가?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는 점이다. 우리의 결정도 그러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최의헌(연세로뎀정신과의원)
[최의헌의 성서 청진기] 인지 부조화
입력 2015-01-03 0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