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서도 이방인… 공동체로 희망을 키워요”

입력 2015-01-02 02:29
지난 30일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봉우재고개 아래의 한 텃밭에서 만난 이아르카지 목사가 고려인 목회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그는 이방인이었다. 자신이 태어난 우즈베키스탄에서는 환영받지 못했다. 우즈베키스탄의 현지인들은 살구색 피부에 검은 머리를 가진 그를 반기지 않았다. 40대 후반, 뒤늦게 자신과 닮은 이들을 찾아 할아버지의 고향에 왔다. 희망은 금세 절망으로 바뀌었다. 믿었던 한국 사람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며 철저히 외면했다.

“1991년 공산주의가 무너지면서부터 한국에 갈 생각을 했죠. 제가 살던 타슈켄트 인근에서 저를 반갑게 맞는 사람은 거의 없었죠. 어떻게든 한국에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이곳도 다르지 않더군요. 한국인들은 고려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저를 차별했어요. 저 ‘전주 이씨’거든요. 하지만 저는 이방인이에요.”

지난 30일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 봉우재고개 아래의 한 텃밭에서 만난 이아르카지(62) 목사는 뜨거운 홍차를 단숨에 들이켰다. 옛 기억에 입이 마른 듯했다. 이 목사는 현재 정왕동 시온교회 목사로 마을선교공동체 CIS시온선교센터의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선교센터가 있는 텃밭의 규모는 약 9900㎡(3000평). 20여명의 고려인은 이 텃밭을 일구며 자급자족의 삶을 살고 있다. 이들을 돌보는 이 목사는 겉으로는 한국에 잘 정착한 듯 보였다. 하지만 그는 기억을 거슬러 올라갈 땐 몇 번이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기기술자인 이 목사는 97년 한국에 입국했다. 기술 덕에 운 좋게 일자리를 구했다. 그해 말 외환위기(IMF)가 터지자 상황이 변했다. 안정적이던 직장은 도산했다. 별 수 없이 건설현장 기계공장 농장까지 한국인이 꺼려하는 일터를 가리지 않고 다녔다. 고된 일에 그의 몸은 성한 곳이 없었다. 한 공장에서는 급여 300만원을 고스란히 떼이기도 했다.

기술자인 이 목사가 신학의 길로 돌아선 것도 이때의 경험 때문이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쳤던 98년 그를 위로해준 사람이 바로 서울 창신동 남부교회 전 담임 김연수 목사였다. 러시아어 예배모임을 막 시작하던 김 목사는 이 목사를 하나님의 길로 인도했다. 김 목사의 도움으로 서울의 한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2002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고려인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싶었어요. 마을을 만들어서 하나님을 전하면 고려인들이 조금이라도 더 잘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았죠. 고려인들에게 한국은 유대인들의 이스라엘과 같아요. 차이가 있다면 고려인들은 한국에 와도 디아스포라라는 거죠. 이를 회복하라는 것이 하나님이 제게 주신 소명이었어요.”

2004년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서 고려인 목회를 시작한 이 목사는 2010년 관악구 신림동으로 이전했다가, 이듬해 고려인이 많이 사는 시흥공단 인근에 시온교회를 열었다. 이곳에서 마을공동체를 시작하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다행히 운이 따랐다. 주말농장에서 만난 한 교인이 나대지를 무상으로 임대해주기로 했다. 땅이 생기면서 나머지 일은 일사천리로 풀렸다. 비닐 사업을 하는 장로가 비닐하우스를 지어줬고, 이 목사가 특강을 간 곳에서 만난 또 다른 장로는 우물을 파줬다. 마을의 기초가 되는 텃밭이 완성된 것이다.

이 목사는 시온광성외국인신학연구원도 만들었다. 고려인이 한국에서 바른 생활을 이어가려면 신학공부가 필수라고 봤다. 이 목사와 한국인 목회자 10여명은 수시로 이곳에서 고려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이 고려인을 다시 한국으로 불러 모으신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가 살려면 먼저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그저 흔한 불법체류자로 살 수밖에 없죠. 신학원을 만든 이유입니다.”

이 목사는 기자를 낮 12시에 만나자고 했다. 텃밭에 세워진 비닐하우스에서 인사를 하자마자 식사를 내왔다. 낯선 사람에게 한 끼 식사를 대접하고 어울리는 게 그들의 예의라고 설명했다. 이 목사는 그들의 고통을 이야기하면서도 한국의 영적 타락을 더 걱정했다.

“15년 넘게 살면서 한국이 영적으로 아주 어렵다는 걸 느꼈어요. 사람들 안에 하나님의 사랑 대신 돈만 있으니 역사가 없고 나라가 없고 문화가 없어요. 고려인을 남으로만 보는 시각도 그래서 생기는 거죠. 저희부터 하나님의 자녀 된 삶을 살 거예요. 그러다 보면 우리가 이방인이 아니라 한 가족이 되지 않을까요.”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