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신달자] 다정함

입력 2015-01-02 02:20

적어도 중학생까진 아버진 나를 ‘다정한 아이’로 부르셨다. 집안이 적막하게 말이 없거나 어머니 아버지가 우울한 일에 직면했을 때 내가 웃기는 역할과 슬픔을 다스리는 말을 잘했다고 아버지는 추억하시곤 했다. ‘달자가 참 다정했는데’와 ‘달자는 이해가 많은 아인데’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곧 좋은 일이 있을 거야’라거나 ‘다시하면 되지 뭐’라는 말도 내가 자주한 말로 기억하시는 아버지는 좀 과도하게 ‘달자는 우리집 희망 정미소’라고까지 하셨다. 그러나 다정한 달자는 많이 변했다. 아버지가 희망심장으로 높이 점수를 주신 다정한 달자, 웃음을 불러 오는 달자는 보기 힘들어진 것이다. 부산으로 서울로 학교를 외지로 옮겨 다니며 소위 인생과 삶의 파도에 쓸리면서 긍정적 사고와 다정함은 저 마음 바닥으로 납작 엎드리고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불평과 의심과 짜증과 신경질, 미움과 욕심도 늘어나서 옛날의 ‘다정한 아이’의 모습에서 많이 멀어져갔다.

변명이야 왜 못하겠는가? 살아 내려고 나는 살아 내려고 안간힘을 썼을 뿐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희망은 멀어지기만 하고 바라지 않은 생의 비틀어진 짐만 무거울 때 어쩌겠는가 어쩌겠는가 나도 할 말이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런 어깨 짓누르는 삶의 무게는 나에게만 주어진 바윗덩이였을까. 그런 인생수업 속에서는 그래, 도저히 다정한 어른은 불가능한 일이었을까. 그늘과 습기로 곰팡이 냄새를 피워야 했을까. 나는 엄마였고 시인이었는데도 그게 그렇게 어려웠을까. 지금 생각하면 반드시 무거운 인생 때문이 아니라 내 안에 그런 몰이해와 탐욕과 감정사기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이가 든 지금도 다 삭이지 못하는 분열의 감정이 있다. 옹졸해졌다. 타인의 기쁨에 대해 만족하게 축하해주지 못한다. 집안청소만 잘하고 집 내부를 아무리 예쁘게 꾸민들 내 안의 청소가 제대로 안 되면 무엇하나? 마음으로는 그 환한 어버지의 희망통장을 새해는 찾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다. 지나간 해와 다르게 새해는 그 다정함과 웃음을 재발급받아 누군가의 위로가 되고 싶다. 교황께서도 새해, 다정함을 강조하시지 않았는가.

신달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