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석촌호수로 산림조합중앙회 건물 측벽에는 신년부터 대형 태극기가 나붙었다. 중앙회 임직원 전원은 5일 시무식의 일환으로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할 예정이다. 조합에서 전례가 없던 일로, 모두 지난 11월 6일 취임한 이석형 신임 회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이 회장은 ‘농사는 땅에서만이 아니라 하늘에서도 지을 수 있다’는 역발상을 통해 산림조합의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임기 4년의 회장에 당선됐다.
이 회장은 인구 3만5000여명에 불과한 전남 함평군에서 1999년 나비 축제를 시작해 전국에 ‘풀뿌리발 새바람’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그가 산림조합의 사령탑으로 변신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런 만큼 산림조합의 앞날이 주목된다. 나비군수에서 산림조합 최고경영자(CEO)로 역할을 바꾼 그를 지난 30일 중앙회 건물 8층 회장실에서 만났다.
-산림조합과는 원래 유대가 있었나.
“군수를 하려면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군수 시절인 2000년 무렵 임업후계자로 등록했고, 100만원 출자를 했는데 그게 회장 출마 자격이 되는 줄은 산림조합 원로들로부터 출마 권유를 받으며 알게 됐다.
-산림조합은 어떤 곳인가.
“산림 소유자와 임업인 50만명의 출자로 운영되는 조직이다. 헐벗은 강산을 40년 만에 녹화시켰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최단기의 성과다. 하지만 지금은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신년 계획은.
“먼저 직원들이 스스로 회장이라는 의식을 갖고 역동적으로 일하기를 기대한다. 애국심이나 정열을 갖고 일하다 보면 신화를 창조할 수 있다. 자치는 주인의식이 있어야 한다. 산림조합은 그동안 애국심 하나로 버텨오며 산림의 공익적 가치 ‘109조(원)’를 창출했다. 국민들에게 이를 제대로 알려야 한다. 세 번째는 목재나 임산물 등 1차 산물에 그치지 않고 2, 3차 산업과 결합하는 사업을 실현하는 일이다. 힐링이나 ‘숲속유치원’처럼 복지·교육과 산림서비스를 연계함으로써 21세기형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도 단위마다 국공립 수목장림을 한 곳 이상 세우려 한다. 우리 가족도 몇 년 전 시골집에 그간 심어온 나무를 각자 고르며 수목장을 하기로 약속했다. 국토의 64%를 차지하는 산 640만㏊ 가운데 사유림이 68%다. 이 중 91%는 5㏊ 미만 소규모다. 이를 1000㏊ 이상 단위로 묶어 ‘선도산림경영단지’로 만드는 게 제1과제다.”
-나비 축제는 어디에서 착안하게 됐고 성공 요인은.
“궁즉통(窮卽通)이다. 함평은 사계절 물이 흐르는 계곡이 없고, 보물도 없고 심지어 귀양 온 선비조차 없다. 초임 군수로 취임하면서 문화·관광·환경을 관통할 21세기형 사업을 고민하던 차에 불현듯 나비가 떠올랐다. 나비로 브랜드를 만들고, 생태학습장을 조성해 관광지로 키우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아이템이 독창적이었기 때문도 있지만 군민들의 동의가 원동력이었다. 공직자들도 주인의식을 갖고 일에 몰입했다.”
-군수 시절 미흡했던 부분이 있다면.
“인사를 하면서 갈등을 용해시키려고 노력했는데도 서운하다고 얘기하는 분들이 있더라. 더 포용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산림조합 회장에 취임한 뒤 일성으로 직원들에게 자필 편지를 쓰도록 했다. 동문회나 향우회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많았다. 이를 폐지하라고 지시했다. 패거리를 없애고 일 중심으로 해야 한다.”
-지방축제가 난무해 재정을 낭비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고민을 별로 안 하고 만드는 경우가 문제일 것이다. 복제는 잘해야 짝퉁이다. 가장 그 지역스러운 것을 찾아야 한다. 지역민의 동의도 필요하다. 함평군민들도 처음에는 ‘나비로 국을 끓여 먹느냐, 밥을 해 먹느냐’면서 반발이 심했다. 의회에 가서 사즉생(死卽生)으로 설득했다.”
-모교인 함평농고를 골프고로 변신시켜 성공했는데.
“친형이 함평고 교사로 있었는데 학생 모집이 안 될 지경이라고 호소해 왔다. 제주농고 골프학과 얘기를 하길래 아예 학교 이름을 골프고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원예과에는 골프장 잔디 과목을 넣고, 농기계과는 골프기기를 넣고 골프관리과도 넣고 해서 최초의 골프고가 탄생했다. 이 학교 출신 신지애 이미향 프로가 LPGA에서 우승하고, 전인지 선수도 발군의 실력을 보이고 있다.”
-정치는 접은 건가.
“지난 4년 동안 도지사 두 번, 국회의원에 두 번 도전해 다 실패했다. 드문 예일 것이다. 하지만 정치는 여의도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산림조합도 국민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내고 안목과 비전, 추진력을 갖고 재탄생한다면 국민의 마음을 살 수 있다. 곁눈질하거나 일신을 위해 길을 가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겠다.”
-안철수 전 대표 진영에 합류하게 된 경위는.
“2012년 대선 국면에서 캠프에서 연락이 왔다. 창조적 DNA나 콘텐츠 등 비슷한 부분이 많으니 같이 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락했다.”
-도지사·국회의원으로 변신을 꾀한 이유는.
“전남에는 많은 섬이 있는데 모두 소중한 자원이다. 이것이 ‘산지기 거문고’처럼 사장되고 있어 신성장 동력으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지방에서 중앙을 바라보면 안타까운 것도 있었다. 민생법을 앞장서서 추진하고 싶었다.”
-PD를 하다가 군수로 길을 바꾼 이유는.
“남자 나이 40이 되면 스스로를 돌아보고 중간평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어른이 단체장 출마를 권유했다. 당시는 내각책임제에 대한 여론이 높던 때라 단체장이 되면 더 큰 일을 할 길이 열릴 것이라 생각했다. 84년 전남대 학생장에 도전했던 경험이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과대표·부대표 등이 투표하는 간선제였는데 함평 빈농 출신으로 기적적으로 당선됐다.”
-창조경영의 아이콘으로 불리는데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에 대한 견해는.
“장관이나 청와대 참모들이 관료문화에 젖어 성과가 더딘 게 아닌가 싶다. 창조경제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조금만 발상의 전환을 하면 된다. 2003년 베이징올림픽 바람을 타고 중국으로의 고철 수출이 늘면서 국내에선 품귀현상이 빚어졌다. 관내를 돌아다니는데 들 가운데 방치된 농기계가 눈에 들어왔다. 보조금이 나오니까 농민들도 귀하게 생각 않기 때문이었다. 3·1절을 기해 고철 모으기운동을 했더니 헌 농기계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새해가 경제 살리기 골든타임이라는데 성과가 나오길 기대한다. 산림조합도 앞장서려 한다.”
-존경하는 인물이 있다면.
“다산 정약용을 가장 존경한다. 이순신 장군도 귀감으로 삼고 있다. 최근 조합 인사를 하면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장군을 벤치마킹하려 ‘명량’을 세 번째 본 뒤 인사를 했다.”
이석형 회장은 39세에 군수 당선된 뒤 내리 3선… ‘함평나비축제’ 성공시켜
이석형(56) 산림조합중앙회장은 1998년 민선 2기 최연소(만 39세) 단체장으로 전남 함평군수에 당선된 뒤 2010년까지 내리 3선을 했다. 재직 기간 중 ‘함평나비축제’를 시작해 연간 수십만명이 찾는 축제로 발전시키며 대표적인 지방자치단체 축제로 자리매김시켰다. 또 함평실업고를 함평골프고로 전환해 세계적 선수를 배출했다. 2008년과 2009년 2년 연속 전국 시장·군수·구청장이 뽑은 ‘일 잘하는 단체장’ 전국 1위에 올랐고 2009년에는 한국지방자치경영대상 최고경영자상과 제1회 다산목민대상을 받았다.
2010년 퇴임 이후 전남도지사와 국회의원 선거(2012년 총선과 2014년 재보선)에 각각 두 차례 도전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지난 11월 6일 치러진 산림조합중앙회 회장 선거에 출마해 지역조합장 출신이 아닌 인물로 처음 당선됐다.
△58년 함평군 장고산 출생△함평농고, 전남대 농과대△87∼98 광주KBS 프로듀서△2007년 1월∼2010년 1월 전국 청년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장△2007∼2009 농림수산식품부 농업 농촌 및 식품산업정책심의회 위원△2007 중앙농정심의회 위원
김의구 부국장 egkim@kmib.co.kr
[데스크 직격 인터뷰] 김의구 부국장이 ‘나비 군수’ 이석형 산림조합중앙회장을 만나다
입력 2015-01-02 0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