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정조의 서재 이름은 홍재(弘齋)였다. 세상에서 가장 큰 서재란 뜻이다. 정조는 역사에 길이 남을 군주이기도 했지만 부단히 학문을 갈고 닦았던 학자이기도 했다. ‘어진 정치’를 베푸는 것을 평생의 뜻으로 삼았던 정조는 논어의 ‘태백’ 편을 매일같이 떠올리며 자신이 나아갈 바를 되새겼다. “선비는 뜻이 크고 굳세지 않으면 안 된다. 임무는 무겁고 갈 길은 멀기 때문이다.” 지식인의 모든 것은 서재에서 시작되었다. 서재에 담긴 이야기를 중심으로 북학과 개혁의 시대였던 19세기 지식인의 면모를 생동감 넘치게 담았다. 추사 연구로 학계마저 놀라게 했던 ‘세한도’의 저자가 5년에 걸쳐 자료를 뒤져 24명의 서재를 확인했다. 정약용은 경거망동했던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평생을 조심스레 살피며 갈고닦는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고 서재를 여유당(與猶堂)이라 이름 지었다. 가난으로 끼니 연명조차 어려웠던 이덕무는 ‘논어’를 병풍 삼고 ‘한서’를 이불 삼아 생활하면서 학문에 힘썼다. 그는 팔분당(八分堂)이란 서재에서 책을 읽으며 완벽한 성인은 못되더라도 10분의 8이라도 이루는 사람이 될 것을 다짐했다. 박지원의 연암산방, 김정희의 완당 등 작은 공간이지만 온 세상이 들어있는 지식인들의 서재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가 각종 문헌과 함께 실렸다.
이광형 선임기자
[손에 잡히는 책] 서재, 선비가 꿈꾼 理想
입력 2015-01-02 0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