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응천(52)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의 구속영장이 31일 새벽 기각되면서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수사는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 채 종국에 접어들었다. 조 전 비서관이 청와대 문건을 박지만(56) EG 회장에게 전달한 행위에 대해 법원은 “구속의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판사가 사안을 가볍게 보는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구속영장을 재청구하지는 않기로 했다. ‘정윤회 문건’의 진위 및 다량의 청와대 문건 유출을 놓고 진행된 이번 수사에서 박관천(48) 경정만 유일한 구속자로 기록되게 됐다.
검찰은 지난 27일 조 전 비서관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죄질로 치면 박관천보다 조응천이 더 나쁘다”고 했다. 하지만 박 경정의 구속영장을 내줬던 법원은 조 전 비서관의 영장을 퇴짜 놨다. 30일 영장실질심사 때 눈물을 쏟아내며 결백을 주장했던 조 전 비서관은 영장 기각 후 “많이 피곤하다”는 말을 남기고 귀가했다. 이로써 검찰의 조 전 비서관 신병확보 시도는 두 번째 무산됐다. 검찰은 조 전 비서관을 지난 26일 피의자로 소환하기에 앞서 체포영장을 청구했지만 역시 기각됐었다.
엄상필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구속영장 기각 사유에 ‘범죄 소명 부족’이란 용어를 넣지 않았다. 그가 지난 12일 서울지방경찰청 정보1분실 한모(44) 최모(45·사망) 경위의 구속영장을 기각할 때 들었던 주요 사유는 범죄 소명 부족이었다. 거꾸로 보면 조 전 비서관이 공직기강비서관 직무수행과 관련해 생산한 문건 등을 박 회장 측에 전달한 행위 자체는 상당부분 입증됐다는 의미일 수 있다.
다만 엄 부장판사는 이런 혐의 내용이 과연 구속감이 되는지에 의문을 표시했다. 이는 사건 초기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 관계자들이 ‘정윤회 문건’을 ‘찌라시’라고 수차례 규정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조 전 비서관이 박 회장에게 문건을 전달했다 하더라도 대통령마저 ‘찌라시’라고 규정한 문건을 대통령기록물이나 보안이 필요한 공공기밀로 보기 어렵지 않으냐는 것이다. 조 전 비서관이 유출했다는 문건의 성격은 앞으로 법정에서 유무죄를 다툴 때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법원은 이와 함께 지난 19일 구속될 당시만 해도 ‘배후’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던 박 경정이 몇 차례 추가 조사가 진행된 뒤에야 공모 관계를 실토한 대목도 의미 있게 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검찰과 법원의 시각 차이가 있는데 우리는 법원의 시각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검찰은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해도 발부 여부가 불투명한 데다 수사 일정 등도 감안해야 해 조 전 비서관을 불구속 기소키로 했다. 2일 박 경정을 구속기소 하고, 당일 혹은 5일쯤 조 전 비서관을 기소할 가능성이 높다. 중간수사결과 발표도 이때쯤 있을 예정이다.
이후 검찰은 새정치민주연합이 문화체육관광부 인사개입 의혹 등으로 정윤회(58)씨와 청와대 비서관·행정관 등을 고발 또는 수사 의뢰한 사건을 추가 조사할 계획이다.
지호일 나성원 기자 blue51@kmib.co.kr
靑문건 ‘찌라시’ 규정… 결국 검찰에 부담
입력 2015-01-01 0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