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성종: 백성아, 왜 여친 안 만드니?… 백성: 집안에 먹고 살 게 없어서요

입력 2015-01-01 02:33
네이버 웹툰 ‘조선왕조실톡’ 4화의 한 장면. 구휼(救恤)에 힘썼던 세종과 성종의 메신저 대화를 가상으로 연출했다. ‘조선왕조실톡’ 이미지 캡처

[친절한 쿡기자] “백성아, 연애하고 싶지 않니?”

조선의 제9대 국왕인 성종이 현재의 20, 30대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요? “임금님이 옛날 분이라 뭘 모르시네. 요즘 젊은이들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에요.” 이런 원망 섞인 답이 돌아오진 않을까요?

그런데 돈이 없어 결혼을 미루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나 봅니다. 31일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웹툰 ‘조선왕조실톡’ 4화가 하루종일 화제였습니다. ‘조선왕조실톡’은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내용을 메신저 대화처럼 꾸민 만화입니다.

4화의 주제는 세종과 성종의 구휼입니다. 구휼(救恤)은 재난을 입었거나 가난한 백성을 구하는 일을 뜻하는데요. 만화 속 성종은 ‘모태솔로남’에게 이런 문자를 보냅니다. “백성아, 왜 여친 안 만드니?” ‘모태솔로남’은 눈물을 흘리는 이모티콘을 잔뜩 붙여서 이렇게 대답하죠. “연애하고 싶어요. 근데 집에 먹고 살 게 없어요.”

성종이 이번엔 ‘모태솔로녀’에게 대화를 겁니다. “아가씨는 왜 남친 안 만들어?” 이 아가씨는 “관심 없어서요∼”라고 대답하네요. 하지만 곧바로 “뻥이에요. 관심 많아요. 병든 부모 모시느라 쌀 한 톨 없어요. 이런데 어떻게 시집을 가요”라고 하소연합니다. 두 남녀의 이야기를 들은 성종은 깨달음을 얻은 듯 “그랬구나. 이제 걱정 말라!”고 답을 보냅니다.

성종의 해결책은 무엇이었을까요? 성종은 돈 때문에 결혼하지 못하는 집안의 자손들에게 혼수비용을 대주는 화끈한 결단을 내립니다. 심지어 조선법전인 경국대전에도 이 구휼 정책을 포함시켜 이후의 왕들도 ‘솔로 구제’에 힘쓰게 했다고 하네요.

만화를 본 네티즌들은 “조선시대보다 후퇴하는 느낌이네요”라고 한숨지었습니다. 올해 연말정산에서 미혼 직장인의 세금 부담이 지난해보다 늘었다는 소식을 떠올리면서요. “조선시대에는 결혼 못하면 지원을 해주는데 지금은 결혼 못하면 세금을 매긴다니…”라고 씁쓸하다는 반응입니다.

사실 성종 이전에도 노총각과 노처녀 구휼은 있었습니다. 장성한 처녀에게 혼수를 주고 혼인을 시키는 법이었죠. 그런데도 40세가 되도록 결혼하지 못하는 남녀가 생기자 세종은 “이 법을 어기는 이들에게 벌를 주라”고까지 했습니다. 중종도 1512년 “가난 때문에 시집 못간 노처녀들에게 관이 혼수를 보조해 시집가도록 하게 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물론 조선시대와 지금의 시대상황을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조선시대 임금들이 몇 대에 걸쳐 ‘솔로 구제’에 힘썼다는 사실을. 새해에는 정치인들이 꼭 기억해주길 바랍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