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제시장’을 두 번 보면서 두 번 다 울었다. 시사회 때 눈물을 흘리고 극장에서 다시 보면서 또 눈물을 흘렸다. 힘들고 어렵게 살아온 아버지 세대의 지난한 세월을 따라가며 영화를 봤다. 눈물샘이 많은 탓일까, 아니면 50대 중년의 주책 때문일까. 최루의 절정은 주인공 덕수(황정민)가 잃어버린 막내 동생을 극적으로 찾게 되는 장면에서였다.
영화를 함께 관람한 20대 중반 대학생 아들에게 물었다. “눈물이 나더냐”고. 조금 눈시울이 붉어지기는 했지만 엉엉 울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이번에는 아들이 질문했다. “옛날에 진짜 그렇게 힘들게 살았느냐”고. 시대 상황이 전부 자신이 태어나기 전이어서 감정이입이 잘 안 되는 대목이 많았다고 했다. “나 혼자 괜히 눈물 콧물 찍고 난리를 피웠나” 싶어 창피하기도 했다.
윤제균 감독은 개봉 직전 가진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대학교 2학년 때 돌아가신 아버지, 평생 고생하신 아버지께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못한 것이 한이 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난한 시절을 열심히, 치열하게 사신 아버지 세대에 대해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극중 덕수와 영자는 윤 감독의 실제 부모 이름에서 따 왔다.
영화는 6·25전쟁과 흥남철수, 부산 피란시절, 서독 광부 파견, 베트남 전쟁, 이산가족 찾기 등 한국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거치면서 정치색은 뺐다. “부모님 이야기를 하는데 정치적인 부분은 들어가도 욕을 먹고 안 들어가도 욕을 먹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철저하게 배제하고 가는 게 낫다”는 윤 감독의 설명이었다.
감독은 정치색을 뺐다는데 영화가 정치적이라며 논란이 일고 있다. 처음에는 영화가 한국 현대사를 거론하면서 정치적 과오는 다루지 않고 시대를 지나치게 미화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부부싸움을 하다가 국기하강식이 열리자 가슴에 손을 얹고 예의를 갖추는 장면 등이 그렇다. 박정희 시대의 ‘애국심 정책’을 은근히 편들어 줬다는 것이다.
영화에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패션디자이너 앙드레김, 가수 남진, 씨름선수 이만기 등 실존 인물이 카메오처럼 등장한다. 윤 감독은 “감정의 진폭이 큰 영화여서 관객이 쉬어가는 부분이 있었으면 해서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유명 인사를 재미있게 넣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치인은 배제했다. 감독은 비정치적인 영화이기 때문이라지만 이 역시 논란을 낳았다.
특히 베트남 전쟁에서 남진이 ‘님과 함께’를 부르고 현지 주민들을 배에 태워주는 장면은 당시 상황을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그렸다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한국이 베트남 전쟁에 참가해 경제적으로 부흥의 발판을 삼는 계기가 됐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물지 않은 상처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일부 관객들은 이런 점 때문에 ‘국제시장’에 조롱을 보내기도 한다.
‘국제시장’의 관객은 보수와 진보 성향의 두 갈래로 나뉜다. 보수 쪽에서는 칭찬 일색이다. 가족이 다함께 모인 자리에서 빠져나온 덕소가 “아부지 이만하면 잘 살았지예” 하는 대사에 공감의 박수를 보낸다. 반면 진보 쪽에서는 비난의 화살을 날린다. 어른 세대가 과거의 잘못에 대한 반성도 없이 “이 고생을 후손이 아니고 우리가 해서 다행이다”는 식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윤 감독은 꽤 영리한 편이다. 정치색을 뺐다고 하면서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코드로 흥행에도 불을 지폈으니까. 그런 점에서 ‘국제시장’은 다분히 정치적이다. 사실 영화를 보고 나름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자유다. 다만 상반된 의견에 서로 삿대질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영화 한 편으로 극렬한 편싸움이 벌어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어디까지나 영화는 영화에 불과하므로.
이광형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ghlee@kmib.co.kr
[내일을 열며-이광형] ‘국제시장’의 정치성
입력 2015-01-01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