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흥우] 2015 을미년

입력 2015-01-01 02:10

을미(乙未)년 새해가 밝았다. 오행에 따르면 10간(干) 가운데 갑(甲)과 을(乙)은 나무를 뜻하는 청색을 나타낸다. 그래서 이제 역사가 된 2014년 갑오년을 청마의 해, 새날이 밝은 을미년을 청양의 해라고 하는 것이다. 푸른 양은 상상 속 동물로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 자연계에 존재한다. 버럴(bharal)로도 불리는 ‘티베트푸른양’이다.

육십간지 중 32번째에 해당하는 을미년엔 유독 전쟁과 지진, 가뭄, 기근 등 천재지변이 많이 발생했다고 역사학자들은 말한다. 도적이 창궐하고, 반란이 일어나는 경우도 잦았다. 삼국사기는 ‘흉년이 들어서 백성들이 굶주리고 이에 더하여 질병마저 돌았다’(755년) ‘서쪽 변방에 큰 기근이 들어 도적이 봉기했다’(815년) ‘동쪽에서 지진이 났다’(875년)고 기록하고 있다.

천년왕국 신라가 망한 때(935년)도, 몽골의 제3차 침입으로 고려가 전란에 휩싸인 때(1235년)도,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에 의해 시해되고, 동학농민혁명이 실패하고 녹두장군 전봉준이 부하의 배신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때(1895년)도 을미년이었다. 현대에 들어와선 1955년 을미년에 유례없는 흉년이 들었다. 농부철학자로 더 잘 알려진 윤구병 변산공동체학교 대표는 한 강연에서 “하도 흉년이 들어 쑥버무리 먹기도 어려웠고 왕겨, 소나무 속껍질을 먹었다”고 대다수 국민이 굶주림에 고통받던 당시를 회고한 바 있다.

돌아보면 을미년은 좋았던 때가 별로 없었던 듯하다. 그러나 예외는 있는 법이다. 올해는 광복 70주년, 분단 7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그 의미에 걸맞게 분단의 장벽을 넘어 진정한 광복으로 한 걸음 두 걸음 나아가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올해는 한·일 수교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일본이 그릇된 역사 인식을 바로잡아 한·일 관계가 정상으로 복원되기를 바라본다.

파랑은 희망의 색이다. 청(靑)에선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기운이 느껴진다. 올 한 해 푸른 양의 기운을 듬뿍 받아 저마다 바라는 바가 모두 이뤄지기를 소망한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