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몸싸움 사라졌지만 효율은 ‘뚝’ 떨어졌다

입력 2014-12-31 02:42

2014년은 국회 선진화법이 본격 시행된 첫해였다. 매년 마지막 날 볼썽사납게 벌어졌던 날치기 처리나 국회의장석 점거, 몸싸움 및 기물 파손 등 극단적 상황은 사라졌다. 새해 예산안도 12년 만에 법정기한 내에 처리됐다. 반면 본회의 상정 처리 안건은 지난해 절반에 불과했다. 세월호 참사 여파로 5개월간 법안 처리가 중단된 측면도 있지만 새로운 룰에 적응하지 못해 국회 운영 자체가 비효율적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선진화법의 위력…예산안 법정기한 내 처리, 폭력 근절=2015년도 예산안이 지난 2일 처리되자 여야 모두 내심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예산안 처리 직후 국회에서는 “진짜 처리된 것 맞느냐” “이제부터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농담도 나왔다.

30일 국회에서 열린 올해 마지막 여야 원내대표 주례회동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마무리됐다.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는 “‘3+3’ 회동은 2014년도 여의도 정가에서 만들어낸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이라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예전에 비해 국민 앞에서 싸우는 모습을 정말 안 했던 것 같다”며 “이런 마무리는 처음”이라고 화답했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보여준 ‘기다림의 정치’가 빛났다는 평가다. 정 의장은 세월호 특별법 협상이 난항을 이어가던 지난 9월 단독으로 민생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여당의 압박을 버텨냈다. 여당 내에서 여당 출신 국회의장에 대한 ‘사퇴권고결의안’ 제출 움직임까지 일었다. 그러나 여야는 결국 세월호 특별법 협상을 타결한 뒤 본회의에서 함께 법안을 처리할 수 있었다.

◇정쟁은 계속, 법안 처리도 지난해의 반 토막=한결 나아지기는 했지만 정쟁에 따른 파행은 올해도 반복됐다. 세월호 특별법 협상과 새해 예산안 심의 과정 등에서 과반 이상의 의석을 확보한 여당은 ‘힘 자랑’을 했다. 야당 역시 국회 보이콧 등 ‘물리적 시위’로 맞섰다.

여야는 지난 29일 본회의에서 이른바 ‘부동산 3법’ 등 148건의 본회의 상정안을 몰아서 처리했다. 하지만 올해 본회의에서 처리된 안건은 1038건으로 지난해 2130건의 절반에 못 미쳤다. 서로 믿지 못하는 여야의 태도와 ‘정쟁 유발 본능’, 지난 4월 발생한 세월호 참사 등이 겹쳐진 결과였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 이후 9월 정기국회 때까지 본회의 대부분이 긴급현안질의나 대정부질문 등으로 채워져 법안 처리가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국회 운영의 내실화를 위해 도입하려 했던 분리국정감사는 시행되지 못했다. 새정치연합의 한 재선 의원은 “국감은 정부와 여당에 대한 야당의 가장 강력한 견제도구”라며 “분리국감을 했다면 보다 훨씬 강력한 효과를 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선진화법의 그늘, 여야 동상이몽=본격 시행 첫해부터 충분히 위력을 발휘한 선진화법이지만 여야 일각에서는 개정 및 보완의 목소리가 높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쟁점법안에 대한 야당의 발목잡기를 방조한다는 이유로 선진화법에 반발하고 있다. 선진화법에 대한 권한쟁의 심판 청구도 추진 중이다. 연말 예산정국에서 법정 처리시한에 쫓겨 ‘자동부의’ 조항에 무기력하게 끌려 다닌 새정치연합도 불만이 있다. 예산안 및 예산 부수법안이 해당 상임위 심사 없이 본회의에 자동 부의되는 조항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선진화법은 쟁점법안 처리에서는 야당에 사실상 거부권을 부여하고, 국정운영에 필수적인 예산안 처리는 정부·여당에 유리하게 설계된 양면이 있어 실제로 개정이 이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여야가 손대려고 하는 부분은 상대 입장에서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해를 넘긴 쟁점 법안들도 많아 새해부터 입법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정부·여당이 핵심 민생경제활성화법으로 꼽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나 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김영란법), 북한인권법 등은 수년째 처리가 미뤄지고 있다. 비정규직 종합대책도 극명한 인식차를 보이고 있어 충돌이 불가피하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