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 회항’은 재벌 3세의 단순한 갑질 사건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대한민국 공무원과 기업의 유착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엄중한 사건이다. 국토교통부는 자체 감사에서 초기 대응 미흡과 부실 조사, 공정성 훼손 등의 문제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김모 조사관을 파면하는 등 관련 공무원 8명을 징계했다.
대한항공은 사건 초기부터 여러 차례 개입했다. 대한항공 임원은 국토부 조사관이 항공기 사무장을 조사할 때 19분간이나 자리를 같이했다. 이 임원은 아예 답변을 대신하거나 보충 설명을 하는 등 12차례나 개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회사 오너에게 유리하게끔 상황 조작을 시도한 것이다. 이 정도면 정부의 공무 집행이 유린되고 무시당한 것이다. 이런 상황이 버젓이 일어난다는 것은 국토부와 대한항공의 관계가 보통이 아니라는 증거다. 게다가 국토부는 사건 초기 대한항공을 통해 조사 대상자 출석을 요구했으며, 대한항공 출신의 조사관을 투입했다. 어린 아이가 봐도 불공정이 뻔한 행위다. 대한항공 출신들이 곳곳에 박혀 있는 국토부의 항공 관련 분야 공무원들이 해당 기업의 하수인 노릇이나 한 것이다. 지난 9월에는 국토부 고위 간부가 건설업계 사람들과 술자리를 같이하고 기업의 법인카드를 소지하고 있다 적발돼 중징계받은 적이 있다.
국민들은 이미 세월호 참사에서도 충격을 받았었다. 해양수산부와 해운업계의 유착 관계를 낱낱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이면에는 부실 인허가나 부실 감독 등 검은 유착 관계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서승환 국토부 장관은 자체 감사 결과가 나온 뒤 “항공감독관 1인이 대한항공과 유착됐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에 대해 큰 실망감과 함께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겨우 조사관 1명이 유착됐다고 대한항공이 이 정도까지 공무집행에 간여할 수 있었을까. 음으로 양으로 먹이사슬처럼 보이지 않는 유착 관계가 형성돼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공무원과 기업의 유착 관계가 비단 이 부처들뿐이겠는가. 대검 반부패부가 올 한 해 동안 전국 검찰청 특수부를 중심으로 진행한 공공기관 비리 수사에서 52개 기관·산하단체의 비리를 적발해 공공기관 전현직 임직원과 업체 대표 390명을 입건했다. 이 중 공공기관 전현직 임직원 107명을 포함해 모두 256명을 구속했다.
공직자는 국민들이 내는 세금으로 봉급을 받는다. 소비자들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받는다. 공직자와 기업 간 검은 유착의 결과는 그대로 납세자와 소비자들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두 부류의 유착은 국민을 우롱하는 중대한 범죄 행위다. 감사원이나 사정 당국은 반부패 척결 차원에서 공무원과 기업의 유착 관계를 파헤쳐야 한다. 사회 곳곳의 부실과 부패, 무원칙과 무책임은 검은 유착 관계에서부터 시작된다. 새해부터는 이런 사안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엄벌해야 한다.
[사설] 공무원과 기업의 검은 유착 무관용으로 엄벌해야
입력 2014-12-31 0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