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속 세상] 나눔의 천사들, 낯선 땅에 꿈을 심다

입력 2014-12-31 02:04
필리핀 마닐라 칼루칸시에서 비앙카양(10)이 페이스페인팅을 하고 있다. 비앙카는 "한국에서 온 언니 오빠들이 페이스페인팅을 해주고 학용품도 줘서 정말 기쁘다. 지금껏 받은 크리스마스선물 중 최고"라며 웃었다.
마닐라 바에사 고등학교에서 이예인(17·왼쪽) 차시원(16) 학생이 보건실에 들어갈 서랍장에 칠을 하고 있다.
필리핀 마닐라 바랑가이 181 지역에서 청소년 해외봉사자들이 벽화 그리기 작업을 하고 있다.
바에사 고등학교에서 현지 주민들이 선물로 받은 학용품 상자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마간다, 마간다….”

해맑은 작은 얼굴 위로 형형색색 물감을 묻힌 붓이 지나간다. 얼마 후 완성된 페이스페인팅을 거울로 보여주자 필리핀 아이들은 연신 ‘마간다’를 연호한다. ‘마간다’는 타갈로그어로 예쁘다는 뜻이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 외곽에 위치한 바에사 고등학교. 마닐라 니노이아키노 공항에서 버스로 1시간을 이동한 뒤 버스가 갈 수 없는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지프니(지프를 개조한 미니버스)로 갈아타 20여분을 더 달려 도착한 곳이다. 500여명의 마을주민은 길가에 나와 한국에서 온 ‘산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에 온 청소년 해외봉사자들의 손에는 음식과 학용품, 놀이용품 등을 담은 박스가 들려 있다. 어린아이부터 백발노인까지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며 손을 흔드는 그들에게 봉사단은 그야말로 한국에서 온 산타였다.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회장 김훈동)가 주최하고 삼성이 후원하는 ‘희망풍차 청소년 멘토링 해외봉사’는 올해로 3년째를 맞는다. 올해는 고등학생과 대학생 50명으로 구성된 봉사단이 1주일간 마닐라 빈민가를 찾아 봉사활동을 펼쳤다.

여운희(47)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청소년적십자(RCY) 본부장은 “다른 해외봉사와 달리 희망풍차 봉사는 대학생을 멘토로, 고등학생을 멘티로 나눠서 구성한다”면서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리더십과 자신감을 배우게 된다”고 강조했다.

본격적인 봉사활동이 시작되자 멘토와 멘티로 구성된 학생들은 각자 맡은 선물박스를 운반하고, 서둘러 배식준비에 들어갔다. 500여명분의 배식이 끝난 뒤 봉사단은 마을주민들 앞에서 문화공연을 선보였다. 3차례의 예비모임을 거쳐 각자 시간을 쪼개 정성껏 준비한 무대를 마을주민들은 큰 환호로 답했다. 난타공연을 시작으로 사물놀이와 태권도 공연까지 환호는 계속됐다. 청소년 봉사자들은 문화공연을 마치고 곧바로 학교 강당과 화장실, 보건실의 개보수 및 벽화작업에 들어갔다.

이번 봉사활동에 참가한 이다인(17) 학생은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라 불행할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와 보니 다들 행복하게 웃으며 사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면서 “그들에게 주러왔지만 오히려 받은 게 더 많고, 봉사의 즐거움과 행복의 절대기준은 돈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박태휘(50) RCY 경기도협의회장은 “결코 길지 않은 1주일의 봉사활동이었지만, 청소년 봉사자들이 부쩍 자란 느낌”이라며 “이번 봉사로 느낀 점이 마음속에 씨앗이 되어 어른이 되었을 때 큰 열매를 맺기를 바란다”고 활짝 웃었다.

마닐라(필리핀)=글·사진 김지훈기자 da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