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신국원] 새해맞이

입력 2014-12-31 02:32

얼마 전 동해안에 갔다가 계획에 없던 일출을 보게 됐습니다. 찬란한 햇살을 받으며 하루를 시작하니 활기가 넘치는 느낌이었습니다. 며칠 뒤 추운 새벽에 이곳에서 새해 해돋이를 기다릴 많은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습니다. 새해 해맞이는 사실 일종의 종교 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라도 복을 빌어 일년 내내 운수대통하길 바라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정작 찬란한 새해 일출을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구름이 끼거나 날이 궂은 경우가 흔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새해 아침 일기에 마음 졸일 일이 없습니다. 주 안에 있는 우리에겐 매일이 찬란한 새날이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 주님께서는 은혜의 해, 희년(禧年)을 선포하셨습니다(눅 4:19), 죄와 사망에서 해방된 우리에겐 매일이 새롭고 복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이런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해가 바뀌면 불안한 마음에 운세를 가늠하러 점을 치기도 합니다. 성도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도는 장래에 어떤 은혜를 소망할 수 있는지 분명히 압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날 우리 모두 부활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생하게 될 것을 밝히 보여 줍니다. 매사를 하나님께 맡기고 살면 불안해 할 필요가 없고 점을 칠 이유는 더욱 없습니다. 인생만사가 뜻대로 풀려야만 행복이 아닙니다. 의지하고 순종하는 삶이 예수 안에 즐겁고 복된 길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하지만 성도들은 “보라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계 21:5) 하신 주님의 약속을 더해 문안해야 합니다. 세상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또 영원토록 변함이 없습니다. 새해도 그의 신실하심에 의지해 살아갈 것입니다. 새해 첫날은 그 은혜를 믿음으로 기대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듯 그리스도인은 새해 첫날을 축하하는 이유도 세상과 달라야 합니다. 구정(舊正)이 대세가 된 지금 신정(新正)은 단지 일년이 시작하는 첫날일 뿐입니다. 한때 정부가 나서서 구정 대신 신정을 설날로 만들려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가난한 살림에 이중과세(二重過歲)하는 낭비를 막으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습니다. 명절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질 수 없음만 확인한 셈입니다. 서양에서도 1월 1일을 한 해의 첫날로 여긴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18세기까지 영국에선 3월 25일이 새해 첫날이었답니다. 중세엔 부활절과 크리스마스를 첫날로 꼽은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슬람이나 힌두교의 새해는 1월 1일이 아닙니다. 동양의 영향력이 강했더라면 새해 첫날은 구정이 되었을 것입니다.

어느 날을 새해 첫날로 삼든, 날짜보다 신앙적 의미 부여가 중요합니다. 세상에선 새해 첫날 조상에게 제사하고 복을 빕니다. 성도들의 신년축하가 창조주를 경외하는 예배여야 할 것은 말할 나위 없습니다. 이제 불과 몇 시간 후면 2014년은 영원히 지나갑니다. 삶이 시간 속에 있다는 사실은 정말 신비롭습니다. 인생은 계절같이 왔다가 가고 또 돌아오는 순환의 고리가 아닙니다. 우리의 시간은 앞으로만 갑니다. 지금은 흘러간 한 해를 감사로 돌아보며 소망으로 새해를 맞이해야 할 시간입니다. 주후 2015년도 주님께서 만사를 주관하실 것입니다. 그것을 믿는 우리는 매일 그의 영광을 위해 살아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꾼이 돼야 할 것입니다.

신국원 교수(총신대 신학과)